금융권 '총체적 양심불량'…대우채권 몰래 편입

  • 입력 1999년 8월 17일 23시 49분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면서 고객을 우롱하는 금융기관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사례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16일부터 투신사 수익증권 가입자에 대한 부분환매가 시행된 이후 이같은 부작용이 속출해 고객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초단기자금을 넣어둔 머니마켓펀드(MMF)의 대우채권비율이 순식간에 50%가 넘어서 낭패를 보는가 하면 은행 신탁상품 고객도 환매거부를 당하기 일쑤.

▽MMF 가입자의 울분〓대구에 사는 이모씨는 3일 S투신의 신종 MMF에 1억5000만원을 넣었다. 대우문제가 불거진 뒤라 불안했지만 판매창구인 S증권 직원은 “전혀 대우와 관계없다”며 안심시켰다.

17일 아파트 잔금을 마련하기 위해 S증권을 찾은 이씨는 “대우채권비율이 52.55%라 1억1300만원 정도만 줄 수 있다”는 담당직원의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환매가 제한되기 전까지 빠져나간 돈을 메꾸기 위해 우량채권을 팔아야 했고 자연 대우채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 직원의 변명이었다. 그러면서도 사과 한마디 없었다.

MMF 자금을 아예 찾을 수 없었던 13, 14일 상황은 더욱 나빴다. MMF 자금을 믿고 외상으로 주식을 산 투자자들은 인출이 막히는 바람에 제때 증권계좌에 돈을 넣지 못해 주식이 강제로 하한가에 팔리는 피해를 입었지만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했다.

한편 신종MMF는 약관상 투자등급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만을 편입하도록 돼 있으나 5월경 대우회사채의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떨어진 이후에도 일부 투신사들은 버젓이 불법편입을 해왔다는 것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 따라서 가입자는 투신사에 펀드내역서를 달라고 요구, 대우채의 편입시기와 당시 신용등급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은행 금전신탁도 환매거부〓인천의 최모씨는 16일 H은행 특정금전신탁에 맡겨둔 1억6000만원을 찾으러 갔다. 중도해지 수수료가 1%나 됐지만 당장 써야 할 곳이 생겼기 때문.

은행 창구에서는 “대우채 때문에 금전신탁도 지금은 해지가 힘드니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환매 제한대상은 투신 증권사의 수익증권에만 국한되는데 왜 은행신탁까지 인출을 막느냐”며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대책은 없나〓금융감독당국은 MMF 가입자의 절박한 사정은 이해하지만 다른 투신상품과 마찬가지로 실적배당형이어서 구제방법이 없다는 입장. 은행들의 신탁상품 환매거부에 대해서는 은행간 협의를 기다려본 뒤 대책마련에 나설 방침.

따라서 현재로서는 긴급자금이 필요한 경우 수익증권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수밖에 없다. 대출조건은 보통 연 10.4∼11.5%의 금리에 상환기간은 최장 1년. 환매받을 수 있는 금액의 90% 가량을 빌릴 수 있다.

〈정경준·박현진기자〉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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