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상장주식 상속 중과세 파장]재벌 '편법상속' 제동?

  • 입력 1999년 8월 17일 18시 25분


재벌가의 ‘편법 상속’에 과연 브레이크가 걸릴까.

정부여당이 16일 재벌 2세의 비상장 주식 상속에 의한 차익에 대해 중과세 방침을 밝힌 것은 재벌가의 편법 상속을 차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부의 ‘부당한 대물림’에 대한 최소한의 제동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이 정도 ‘그물’로 재벌의 첨단 ‘상속 재테크’를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재벌들의 애용 수법〓비상장 주식을 양도해 시세차익을 얻는 방법은 재벌들이 ‘애용’해온 상속수법이었다. 가령 이건희(李健熙)삼성회장의 장남 재용(在鎔)씨는 이 방법을 활용해 불과 4년만에 60억원을 수천억원대로 불렸다.

95년 재용씨가 이회장으로부터 상속 받은 돈은 60억원. 그는 이 돈으로 계열사인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사들였고 2년 뒤 상장되자마자 팔아 527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또 에버랜드와 삼성전자 제일기획은 사모전환사채를 인수한 뒤 역시 상장 뒤 주식으로 전환해 큰 차익을 남겼다. 이 과정에서 재용씨가 부담한 세금은 60억원을 받으면서 낸 16억원이 전부.

SK는 더 ‘적극적인’ 기법을 구사했다. 현 최태원(崔泰源)회장은 94년 SK㈜가 주당 1만원에 출자한 비상장사 대한텔레콤의 주식 70만주를 아버지 최종현(崔鍾賢)회장으로부터 주당 400원의 헐값에 넘겨받았다.

대한텔레콤은 당시만 해도 부실회사였으나 SK는 내부자 거래 방식으로 지원, 적자기업에서 순이익 100억원대의 탄탄한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부실기업을 회사 돈 들여 우량기업으로 만들어줌으로써 주식가치를 높여준 셈이다.

▽신종 ‘상속 재테크’ 속출〓금융기법의 발달로 재벌들은 상속세 법망을 피할 방법을 속속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모전환사채(CB)가 재벌가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다. 사모CB를 발행해 2세에게 인수케 한 뒤 주식으로 전환해 막대한 차익을 얻는 수법이다.

재벌그룹 비서팀에는 후계자의 재산을 관리하는 전담팀이 구성돼 ‘편법 절세’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들은 임원을 동원해 가차명 계좌를 활용하기도 하고 특수관계인들끼리 ‘미로’같은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당사자끼리 말을 맞추면 탈법행위를 포착하기도 힘든다.

▽피할 ‘구멍’ 아직 많다〓편법상속 문제를 제기해온 참여연대측은 이번 정부 조치에 대해 한마디로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편법 상속의 여러 길목 중 겨우 한 곳에 ‘그물’을 친 것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윤종훈회계사는 “정부는 항상 ‘사후약방문식’ 처방을 한다”면서 “이번 대책도 ‘상장시’ 등 한정적인 조건을 달아 허점이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새 법규를 만들기에 앞서 일단 기존의 법조항을 충분히 활용하라고 주문했다. 가령 겉으로는 증여행위가 명백하지 않지만 사실상 증여로 볼 수 있는 경우 과세할 수 있게 한 ‘증여의제조항’도 활용할 여지가 많다는 얘기다.

장하성 고려대교수는 “세제개혁과 함께 임원들이 갖고 있는 가차명지분을 적발하는 등 좀더 포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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