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및 감리업체 비리를 수사중인 검찰이 23일 공개한 「담합(談合)공사 명부」는 건설업계에 담합이 어느정도 관행화됐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95년 이후 발주된 7백여건의 주요 관급공사 입찰이 대부분 답합을 통해 이뤄졌음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설계 감리에서의 담합수법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한 업체가 관심있는 공사의 발주계획을 알아낸 뒤 다른 업체에 지역과 기술 연고권 등을 내세워 입찰에 들러리를 서줄 것을 부탁한다.
예외가 없는 한 대부분 담합을 통해 낙찰되기 때문에 업체들은 3개월 단위로 주고 받을 떡값을 상계처리하고 회계장부에는 외주용역계약 등으로 위장 처리해왔다.
이들이 담합해 따낸 공사의 평균낙찰률은 예정가의 95∼98%로 정상적인 입찰에서의 낙찰률 85%보다 10% 이상이나 높았다.
이들은 낙찰률을 높여 더 받아낸 돈을 기술개발을 위한 재투자로 활용하기보다는 발주처 공무원들에게 로비용 뇌물로 사용했다.
또 발주처인 각급 지방자치단체나 건설교통부 산하 지방국토관리청 간부들은 수천만원씩 챙기며 부실한 관리 감독을 함으로써 비리의 구조화가 이뤄져온 사실도 드러났다.
특히 이들 공무원은 5억원 이상 규모의 입찰 때는업체들이반드시거쳐야 하는 기술제안서 심사단계에서 돈을 받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밖에 적발된 업체들 대부분이 지난 93년 경부고속철공사에서 설계및 감리용역을 맡았던 것으로 밝혀져 고속철 역시 「부실입찰→부실감리 및 설계」가 있지 않았는가 하는 의혹이 일고 있다. 그러나 고속철공사는 입찰방해죄의 공소시효(3년)가 지났다는 이유로 이번 수사대상에서 제외됐다.
한편 이번 수사에서는 만성적인 기술사 부족에 따른 업계의 「기술사 과잉우대」관행 때문에 기술사들이 현장에도 가지 않은 채 「탁상감리」를 해온 사실도 확인됐다.
「기술력 대신 로비력에 승부를 거는」 업체들의 관행은 설계 및 감리업계의 국제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기술의 해외진출 실적은 2천만달러(약 1백80억원)에 불과한데 비해 해외에서의 기술도입은 1억2천4백만달러(약 1천1백16억원)로 심각한 역조현상을 보였다.
〈공종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