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협력업체 실태]목마른 돈줄 『매일 부도위기』

  • 입력 1997년 8월 12일 20시 38분


기아자동차에 15년간 플라스틱제품을 납품해온 경기 안산의 S사장. 한달째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눈만 감으면 언제 회사문을 닫아야 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때문이다. 지난달 15일 기아그룹이 부도유예에 적용된 이후 그는 거의 사무실을 지키지 못했다. 대신 기아에서 물품대로 받은 8억원의 어음을 할인받기 위해 뛰어다녀야 했다. 그동안 신용으로 10여년간을 거래해 온 은행들이지만 기아어음을 들이밀자 당장 고개를 내저었다. 결국 자신의 아파트와 회사건물을 담보로 제공하고 할인을 받았지만 자체 발행어음 6억원과 자재구입비를 막는데도 힘이 부쳤다. 7월까지 월급은 제때 주었지만 지난달 말 상여금(기본급 100%)은 지급하지 못했다. 직원들의 눈길을 의식해 은행으로 뛰어보았지만 이미 담보여력은 바닥난 상태다. 이달 들어 경기도청의 지원자금 1억6천만원을 받기로 해 다소 숨통이 트이는 듯했지만 그쪽도 담보를 요구하기는 마찬가지. 은행지점장을 찾아가 매달리다시피하는 일은 12일까지도 이어졌다. 매일 오전 6시에 회사에 출근하는 그의 업무는 간부사원과 갖는 「최악 대책 회의」. 부도라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법정관리와 화의(和議)신청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의논한다. 지금까지 근근이 버텨온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14일 만기가 돌아오는 기아발행어음. 기아가 이를 결제하지 못할 경우 은행이 당장 환매(還買)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걸려 있는 금액은 2억원이지만 지금으로서는 갚을 능력이 없는 상태다. 1주일이 지나도록 갚지 못할 경우 불량거래자로 분류돼 금융거래가 중지될 판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姜慶植(강경식)부총리가 지난 5일 『기아협력업체 문제는 기아가 해결할 일』이라고 말하자 그는 격분했다. 당장 청와대와 금융기관 등에 익명으로 호소문을 보냈다. 그는 이 호소문에서 『정부는 뒷짐이나 지고 방관하고 있으며 은행은 자기 몫 챙기기에 급급한 상황에서 열심히 일해 국가에 세금을 내며 국민의 의무를 다한 부품업체들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부품업체는 정부의 어설픈 자유경쟁 논리의 희생물』이라고 주장했다. 〈박현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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