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터뷰]자수성가형 안병균 나산그룹회장

  • 입력 1996년 12월 20일 19시 33분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건 결코 엄살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뛰어 잘 살아보자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해결방안이 있고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安秉鈞(안병균·48)나산그룹회장의 말이다. 안회장은 지난 91년 가을 국세청이 전년도 종합소득세 납부 순위를 발표했을 때 전국 1위에 올라 유명해진 기업인이다. 당시 세상 사람들은 무명의 안회장이 내로라하는 재벌총수들을 제치고 90년 한햇동안 가장 많은 돈을 벌어 소득세를 제일 많이 낸 숨은 기업가였다는데 놀랐다. 그 뿐만 아니라 가난때문에 「중학교 입학 3개월만에 중퇴」한 학력에다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중견기업을 이끄는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변신했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러한 경력의 안회장이 요즘 국내 경제 돌아가는 것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어떤 처방을 갖고 있을까. 기업은 어떻게 꾸려가는지 그의 얘기를 듣고 싶어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갓 지은 주상복합건물 보라매 나산스위트의 회장실을 찾았다. 그는 인터뷰의 취지를 듣기가 무섭게 경제가 어려워진 까닭에서부터 나름대로의 해결방안을 강의하듯 말해나갔다. 그의 말은 경영현장에서 우러나온 탓인지 거침이 없었다. ▼勞使 「세계마인드」 가져야 ▼ 『실명제는 좋은 제도이고 법률로는 예금자의 비밀보호를 하도록 돼있는데 실제로는 이것이 잘 안지켜지는 것으로 주위에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융기관으로 갈 돈이 장롱으로 숨거나 과소비로 흘러가는 요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고 봅니다. 공식적인 수치를 알지는 못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해외로 빠져나간다고 추정할 수도 있구요. 물론 명백한 범법사실에 대해선 관련 금융계좌의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하겠지요. 그러나 그런 경우 외엔 누구라도 마음놓고 예금할 수 있는 분위기가 돼야 합니다』 기업환경이 바뀌고 있는 만큼 노사의 기본 마인드도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발족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으로 이제 「우리끼리」시대는 가고 세계속의 한국기업으로 살아남아야 할 무한경쟁시대를 맞게 됐습니다. 각종 코스트가 적절하게 매겨져 있는가, 경쟁력은 있는가 등을 부단히 따져보고 그렇지 않다면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사용자는 근로자의 역할을 평가하고 근로자는 기업이 망하면 직장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직시해 세계속의 한국기업으로 살아남아야 다같이 살아갈 수 있다는 마인드를 다져야 할 때입니다』 ―안회장은 젊은 시절에 온갖 고생을 다해 열심히 일했는데 요즘 젊은이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근로자들중엔 70년대에 출생한 젊은이들이 많아요. 의식구조는 발랄하고 바람직한 면이 많은 반면 대체로 고생을 모르고 자라난 세대 탓인지 돈 귀한줄 모르고 안이한 자세를 보이는 면도 있어요. 그러나 젊은이들만 나무랄 수는 없을 것 같고 교육쪽에서 심도있게 사회적응교육을 시키면 어떨까 싶어요』 최근 중국 상해(上海)를 다녀온 그는 나산의 청도(靑島) 현지공장에 시청 간부가 스스로 찾아와 『도와줄 게 없느냐』며 적극적인 행정서비스를 펴는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상해시 청사엔 최고급호텔 수준의 외국인 전용식당을 갖추고 시청의 고급간부가 직접 외국인투자유치에 열을 올리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기업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경쟁력이 없고 힘들다고 해요. 작년과 금년 중소기업 부도가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기업 그만두고 편하게 지내는 방법이 없느냐는 기업가들의 소리를 많이 들어요. 소비 중심의 서비스산업이 번창하는 것과 함께 우려할 만한 현상이지요. 사업하는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도록 그들의 사기를 높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해요』 안회장도 다시 한번 뛰어보자는 국민적 공감대의 형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 패션-유통-금융업 전념 ▼ 『나의 잘못은 지적하지 않고 남의 잘못만 나무라고 있어요. 내가 사는 사치품은 괜찮고 남이 사는 사치품은 비난의 대상이 되구요. 앞에서 중국의 예를 들었지만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에서 나타나고 있는 지자체와 일부 주민들의 행태를 보더라도 이래 갖고서 어떻게 경쟁력을 살릴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날을 돌이켜볼때 지금이 기업을 꾸려가기가 가장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기업경영에 전념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영외에 신경 쓰는데가 너무 많아요. 중앙정부 쪽에선 없어졌는데 주로 민간 사이드의 각종 단체에서 「만나 달라」 「나와 달라」 「도와 달라」는 청이 많기 때문이죠. 아침 7시반에 회사에 나가 저녁 6시반에 퇴근하는 사이 단10분도 쉴틈이 없지만 회장인 내가 근무시간의 90%라도 국제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고 기업을 챙기는 일에 전념하고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느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최근엔 유통사업에 심혈을 기울이는데 우리나라의 유통업이 이대로 가다간 외국업체 차지가 되고 그렇게 되면 제조업이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됩니다. 새해부터는 경영외의 일은 차단하고 기업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안회장은 그러나 국민 대다수가 지금 상태에서 안주하면 힘들지만 각성해서 뛴다면 앞날을 낙관한다고 말한다. 『어렵다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합니다. 「큰일 났다」 「안되겠다」하는 게 문제해결의 시발점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동안 국제경제환경이 바뀌고 어려워졌는데 준비를 소홀히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외제 못지않은 제품을 개발해 품질을 높이고 가격을 내려 시장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나산그룹은 현재 의류제조업체인 ㈜나산을 모기업으로 건설 유통 금융 방송광고 스포츠레저업종 등의 15개 계열기업에 3천5백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총매출은 작년 9천3백여억원에서 올해 1조5천억여원에 이를 전망이다. ―무일푼에서 이처럼 큰 기업을 일군 비결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부단한 노력과 함께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점을 커버하기 위해 독서를 많이 하고 새로운 업종을 끊임없이 모색한 데다 운이 따라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간관계가 사업의 핵심이 됐습니다』 안회장은 『다시 태어나도 사업가가 되겠다』는 말과 함께 『다른 사업을 벌여나가기보다는 현재의 패션과 유통 금융 건설업을 2000년대 부가가치 높은 세계적 기업이 되도록 내용을 다지는 일에 전념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담=崔熙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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