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발언대]WTO와 「NO」라 할 수 있는 한국

  • 입력 1996년 12월 9일 20시 24분


요즘 세계무역기구(WTO)각료급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려 「새로운 의제」들을 논의중이다. 이를 보면 태풍이 이미 불기 시작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서울에선 거의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지난 주간에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WTO에 대응하기 위해 열린 세계 민간단체 워크숍에 다녀왔다. 여기서 제기된 「태풍의 눈」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다자간투자협정(MAL)이 선진국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모든 분야에 걸쳐 어떤 회사가 어디서든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하자는 논의다. 이른바 「내국대우」를 하게 되면 시장진입과 운영과정에 대해 주권국가가 아무런 통제를 할 수 없게 된다. 초국적기업들이 각국의 중소기업과 소상인 소규모 농민들과 「자유롭게」 경쟁을 한다는 것은 호랑이와 토끼 싸움처럼 결과가 자명하다. 노동기준과 무역을 연계시키려는 이른바 「블루라운드」 역시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것은 국제노동기구(ILO) 창립때부터 논의되었던 해묵은 과제다. 이 「사회문제조항」들이 집요하게 제기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유무역의 주창자들인 선진국들이 경제성장 침체와 실업률증가로 국제경쟁력이 떨어지자 자국산업과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개도국의 노동조건, 인권문제, 부정부패 문제들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노동조건을 세계적으로 높이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우리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다만 그 논의의 장은 ILO가 되어야지 실제로 자유무역에 역행하는 몇몇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WTO가 되어서는 안된다. 부정부패 문제를 무역과 연결시키려는 「부패라운드」도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미국의 주장대로라면 미국의 사업가들은 미국법에 따라 뇌물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고 정부 프로젝트를 따내는 경우 경쟁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세계적인 통용기준을 만든다는 자체가 어렵고 일일이 증명할 수도 없으며 WTO가 명시적으로 「집단적 규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실효성도 없다. 더군다나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들이 각국을 순방하며 기업을 대신해서 협상을 하거나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행위는 전혀 문제를 삼고 있지 않는데 이것이야말로 불공정 행위가 아닐 수 없다. WTO의 목적은 전 세계사람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더 많은 고용이 창출되며 소득수준이 더 올라가게 하기 위해 모든 무역장벽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96년의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인간개발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30년 동안 10년전보다 오히려 소득이 낮아졌다. 지난 30년동안 세계 억만장자 3백58명의 총소득은 세계인구의 45%인 23억명의 총소득과 같은 수입을 올렸다. 자유무역이 모든 세계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것이라는 것은 현재 희망사항일 뿐이다. WTO가 보다 공정하게 운영되려면 한국이 종속한 과제들에 대해 분명하게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유 재 현<경실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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