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비리 특종을 오보로 만든 댓글공작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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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작 ‘댓글부대’ 27일 개봉

영화 ‘댓글부대’에서 여론을 조작하는 무리 ‘팀알렙’이 댓글 작업을 하는 모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영화 ‘댓글부대’에서 여론을 조작하는 무리 ‘팀알렙’이 댓글 작업을 하는 모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개운하고 통쾌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길 바란다면 이 영화를 골라선 안 된다. 영화의 소재인 ‘댓글부대’는 마치 일산화탄소 같다. 무색, 무취에 피부에 자극도 없지만 서서히 중독시켜 죽음으로 이끄는 일산화탄소처럼 댓글부대는 눈에 보이지도, 꼬리를 밟히지도 않는다. 하지만 서서히 한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파괴력을 가졌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면 홀연히 그곳에 없던 것처럼 사라져 버린다. 어쩌면 괴수가 나오는 크리처물이나 ‘험한 것’이 나오는 오컬트물보다 더 무시무시한 영화 ‘댓글부대’가 27일 개봉한다. 영화관을 나서며 모골이 송연해질지 모른다. 내가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수많은 댓글들, 공작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댓글부대’는 대기업을 저격했다가 오보 논란에 휘말린 신문기자 임상진(손석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임상진은 굴지의 대기업 ‘만전’이 중소기업 기술을 탈취했다는 제보를 받고 정황을 자세히 취재해 기사를 쓴다. 단독 기사를 내놨다는 만족감을 안고 다음 날 인터넷을 열어 본 임상진은 당황한다. 만전이 곧장 조작된 듯한 해명 사진을 내놓으며 반박에 나선 것. 더 나아가 그 시각 온라인에는 만전을 두둔하는 댓글이 쏟아지고, 임상진의 얼굴 사진과 신상을 털어 만든 모욕적인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돌아다닌다. 그의 기사는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오보가 되고 회사로부터 정직을 당하고 만다.

사회부 기자 임상진(손석구)이 댓글부대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온라인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장면.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사회부 기자 임상진(손석구)이 댓글부대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온라인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장면.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억울한 마음을 억지로 달래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임상진의 일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제보가 들어온다. 자신을 닉네임 ‘찻탓캇’으로 소개한 남자는 “우리가 만전의 사주를 받고 여론을 조작했다. 기사를 오보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임상진은 그의 말이 사실인지 쫓기 시작한다. 영화는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을 소재로 한 장강명 작가의 소설 ‘댓글부대’를 각색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년)로 호평을 받았던 안국진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배우 손석구가 댓글부대의 실체를 쫓는 기자 임상진 역을 맡았다. 제보가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부터 거짓인지 가려 내려고 노력하지만 혼란에 빠지고 마는 모습을 실감 나게 연기했다. 관객들 역시 자신이 임상진이라면 어떤 결론을 내렸을지 생각해 보게 한다. 2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임상진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거울 같은 인물”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핸들을 잡고 차를 운전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차가 저절로 움직이고 있다면 그건 수동적인 것도, 능동적인 것도 아니다. 임상진은 현대인의 그런 아이러니를 가진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인들이 독자적인 생각과 판단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교묘하게 만들어진 여론 전쟁에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영화는 ‘댓글부대’의 존재 여부에 대한 궁금증을 계속 자극한다. 이에 대해 안국진 감독은 “댓글부대라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실체는 없는 것 같은 존재 같다. 실체를 장담할 수 없고 현상은 있는데, 실체가 있다기엔 증거도 없다”고 설명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대기업#비리#특종#오보#댓글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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