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바위솔 등 우리 자생식물 살려 지역소멸 막겠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5일 09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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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50일 맞은 임영석 국립수목원장 인터뷰

경기 포천시 국립수목원 난대온실에 선 임영석 신임 국립수목원장. 그는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 자생식물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국립수목원 제공

“진주바위솔, 정선국화, 울릉제비꽃은 원산지 명칭을 이름에 담은 아름다운 우리나라 자생식물입니다. 지역의 명칭을 딴 한반도 특산식물이 전국 45개 지방자치단체에 57종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심각하게 훼손돼 사라지고 있습니다. 국내 최고의 자생식물 증식기술을 갖춘 국립수목원이 이 식물들을 잘 보존시켜 지역의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소멸을 막는 데 기여하겠습니다.”

경남 진주시에 자생하는 진주바위솔. 국립수목원이 조직배양 방법을 이용해 대량증식에 성공했다. 국립수목원 제공
경남 진주시에 자생하는 진주바위솔. 국립수목원이 조직배양 방법을 이용해 대량증식에 성공했다. 국립수목원 제공

취임 50일을 맞은 임영석 국립수목원장(47)을 만났다. 국립수목원은 연간 40만 명이 방문하는 국민의 녹색 쉼터이자 다양한 산림생물종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그는 ‘미스김라일락’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야생화인 북한산 백운대의 털개회나무가 1948년 미국으로 넘어가 미스김라일락으로 개량돼 세계적 관상수가 되었습니다. 자생지가 한국인데 지금은 우리가 역으로 수입해 로열티를 내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한국이 자생지이지만 미국에서 개량돼 우리가 역으로 수입해 로열티를 내고 있는 미스김라일락. 국립수목원 제공


●“지역 식물 통해 지역 브랜드 만들자”
유전자원을 사용하며 생기는 이익을 공유하기 위한 국제협약인 나고야의정서(2014년)가 발효되면서 생물자원의 주권 확립에 대한 국가 간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생물자원 무기화에 따른 생물 주권 활용 발굴과 실용화 기술개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임 원장은 국립수목원의 자생식물 증식기술에서 이런 상황을 헤쳐갈 해법을 찾는다.

강원 정선이 자생지인 정선국화. 국립수목원 제공

“지역 자생식물이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지역소멸을 극복할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국립수목원이 각 지역의 자생식물을 증식하고, 지자체들은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생산하면 자생식물로 지역의 스토리를 풀어내는 ‘지역 브랜딩’이 됩니다. 울릉제비꽃을 보기 위해 울릉도 여행을 떠나면 그것이 곧 ‘가든 투어리즘’입니다. 지역 자생식물은 정원의 식물 소재나 반려식물로 활용할 수 있고 추출물이 항노화 기능 등을 갖기도 해 산업화도 가능합니다. 식물을 통해 국가와 지자체가 상호 협력하는 ‘식물 거버넌스’를 구축하겠습니다. 벌써 몇몇 지자체장이 관심을 보입니다. 순천만국가정원처럼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역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전 세계에서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는 울릉제비꽃. 국립수목원 제공

국내에 ‘국립’이라는 명칭을 쓰는 수목원은 여럿 있지만 국가 공무원이 운영하는 수목원은 국립수목원이 유일하다. 1987년 광릉수목원으로 개원해 1999년 국립수목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광릉숲은 조선의 제7대 왕 세조의 능(陵)인 광릉이 조성된 후 부속림으로 지정돼 엄격하게 관리돼 광릉요강꽃과 장수하늘소 등 희귀특산생물이 사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국립수목원은 이런 광릉숲뿐 아니라 경기 양평의 유용식물증식센터, 강원 양구 펀치볼 일대의 국립DMZ자생식물원, 강원 인제 점봉산과 경북 울릉도의 시험림 관리도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태적 가치가 가장 우수한 곳들이다. 20여 년간 산림청의 엘리트 공무원 코스를 밟아온 그가 국립수목원을 이끌게 되자 조직에 신선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인 광릉숲에서만 볼 수 있는 신비로운 광릉요강꽃. 국립수목원 제공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인 광릉숲에서만 볼 수 있는 신비로운 광릉요강꽃. 국립수목원 제공

“취임해서 국립수목원 직원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우리 국립수목원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무엇이냐고요. 그 명확한 답을 찾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기초연구는 수목원 관리 운영과 함께 국립수목원의 중요한 한 축이되, 그 연구가 국민 생활과 동떨어지면 안 됩니다. 우리 조직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려 나가겠습니다.”

●식물통일 준비와 정원문화 확산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관과 유엔식량농업기구 등 해외 근무 경험이 풍부한 임 원장은 식물통일에 대한 열망이 각별하다. “외국인들에게 가장 신비로운 장소가 비무장지대(DMZ)입니다. DMZ는 70여 년간 인간의 간섭이 최소화한 세계적 생태연구의 보고(寶庫)입니다. 국립수목원은 2016년 강원 양구군에 우리나라 최북단 식물원인 국립DMZ자생식물원을 열고 북방계와 북한의 식물까지 두루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남과 북이 같은 식물을 두고 다른 이름을 부르지만 지금 연구해두면 통일이 됐을 때 식물을 통해 우리 민족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식물 보전과 복원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식물통일’을 준비하겠습니다.”

식물연구와 수목원 현장관리를 두루 담당하는 국립수목원 직원들. 국립수목원 제공

2000년대 중반 산림치유 개념을 국내 행정에 도입하고 지난해 산림청에 정원 조직을 신설하는 실무를 맡았던 그는 요즘 정원치유에 주목하고 있다. “정원은 청소년 등 현대인의 마음의 병을 위로하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다양한 전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가능한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알리겠습니다.”

지난달에는 경기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전국 지자체 정원업무 관계자 200여 명을 불러모아 ‘2024 대한민국 정원네트워크 워크숍’ 행사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함께 노력해 모두가 정원이 풍부한 도시에서 삶의 질을 높여나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 정원활동을 통해 단조로운 돌봄 노동에서 벗어나 정원에서 위로를 얻는 모습. 국립수목원 제공

임 원장에 따르면 이달 초 국립수목원 숲생태관찰로가 25년만에 새단장돼 선보였다. 숲의 천이과정을 볼 수 있는 460m 데크길로 조성된 공간으로, 동선의 경사를 낮춰 보행이 불편한 이용자도 편안하게 숲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요즘 구근식물이 싹을 내밀고, 큰산개구리가 우는 국립수목원에는 새들을 관찰하러 오는 관람객들도 눈에 많이 띈다.

국립수목원의 봄을 알리는 큰산개구리. 국립수목원 제공


●미래를 향한 식물 연구와 교감
국립수목원의 미래를 향한 식물 연구는 우주에도 눈을 돌렸다. “미 할리우드 영화 ‘마션’에서 주인공이 우주선 안에서 감자를 키웠듯, 그동안 우주 환경에서 먹을 수 있는 작물 재배 연구가 있었는데요. 저희는 우주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우주 식물 연구, 우주 선체에 반려식물이 공존하는 정원환경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다행히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교감이 시작돼 새로운 접근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립수목원 전경. 국립수목원 제공

임 원장은 경기 용인 자연농원(현 에버랜드) 사택에서 태어나 원예, 조경, 산림자원학을 두루 공부했다. 국내 1세대 조경가로 삼성래미안 아파트 조경을 담당했던 임삼춘 전 삼성물산 고문이 부친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그의 손목시계가 궁금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흑단으로 만든 시계가 있는 걸 보고 우리 나무로 시계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어 5종류의 수종을 테스트해봤습니다. 이건 느티나무로 만든 시계에요. 나무는 자꾸 보고 만져봐야 정이 듭니다.”

국립수목원 ‘숲이오래 키즈아카데미’에서 미래세대인 어린이들이 생명활동 오감체험 활동을 하는 모습. 국립수목원 제공

그는 올해 식목일 무렵 ‘어린 왕자 프로젝트’를 펼칠 예정이다. 국립수목원에서 마음에 드는 나무를 골라 ‘내 나무’로 삼는 캠페인이다. 우선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작한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반려식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습니다. 흔히 ‘내 나무’를 갖는다고 하면 나무 심기부터 생각하는데, 이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어린 왕자가 장미꽃과 관계를 맺듯 내 나무를 정해 이름을 지어 불러주고 돌보고 안아주는 것입니다. 잘생긴 나무를 좋아할 수도 있지만 위태로운 환경에 심어진 연약한 나무에 마음이 향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는 72억 그루의 나무가 있습니다. 우리 국민이 삶 속에서 ‘내 나무’를 가졌으면 합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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