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상인도 그림으로 ‘플렉스’ 했다…양정무 교수가 꼽은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재미 포인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1일 10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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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가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를 찾아, 요아힘 베케라르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작품을 마주하자마자 그는 들뜬 듯 그림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그 속에 얽힌 사람과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최근 발간한 책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내셔널 갤러리 특별판’에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좋은 작품 앞에 섰을 때 느끼는 즐거움에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작품 속에 묻은 인간사의 단면을 끄집어내며 호기심을 충족하는 기쁨을 느낀다. 이런 즐거움과 기쁨을 담아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56)가 쓴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는 2016년부터 현재까지 7권이 출간됐고 30만 독자가 탐독했다.


최근 이 시리즈 최초 특별판인 ‘난처한 미술이야기: 내셔널갤러리 특별판’(사회평론)이 출간됐다. 영국 런던대(UCL) 박사 학위를 받은 그에게 내셔널갤러리는 각별한 곳. “오랜 친구들이 한국에 온다는데 잘 대접하고 싶었다”는 그와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를 찾아 눈여겨볼 포인트를 짚었다.

베케라르 정물화, 화끈한 플렉스
양 교수의 신간은 글 10편을 통해 전시된 작품을 보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중에서 요아힘 베케라르의 ‘4원소: 물’(1569년)과 ‘4원소: 불’(1570년)을 그는 반가운 작품으로 꼽았다.
“작품이 그려진 안트베르펜은 성상 파괴 운동을 겪어 종교화가 줄고 상업이 발달한 곳입니다. 그 결과 이 그림에서는 풍요로운 정물은 전면에, 종교적인 메시지는 후면으로 밀려나는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죠.”

요아힘 베케라르, ‘4원소: 물’, 1569년,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요아힘 베케라르, ‘4원소: 물’, 1569년,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두 작품 중 ‘물’은 물고기가 쏟아질 듯 넘치는 수산물 시장을, ‘불’은 고기가 그득한 부엌을 표현하고 있다. 전체 4점으로 나머지 작품인 ‘공기’는 가금류와 알을, ‘땅’은 채소와 과일을 묘사하고 있는데 폭 2.1m, 높이 1.6m가 넘는 대작으로 부유한 상인이 주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그림 전면에 왕족, 귀족·성직자가 아닌 부유한 상인 즉 ‘제3신분’이 부각된 것도 특징이다.
양 교수는 이것이 자본주의가 형성되며 생긴 새로운 사회 질서, 종교에 대한 태도를 그대로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장에 넘치는 탐스러운 상품을 속절없이, 부끄러움 없이 화끈하게 즐기는 태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라며 “다만 그림의 가장 깊은 곳에 성경의 내용을 배치해 교훈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요아힘 베케라르, ‘4원소: 불’, 1570년,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요아힘 베케라르, ‘4원소: 불’, 1570년,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두 작품은 각각 성경 속 ‘고기잡이의 기적’(물), ‘마르타와 마리아’(불)를 인용하고 있는데 이 역시 과거와 다르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성모자상 등 성경 속 단순한 주제가 사용됐지만, 이 주제들은 성경을 읽은 사람이 알 수 있는 깊은 주제다. 양 교수는 “종교개혁과 인쇄술의 발달로 성경의 독자가 늘어나면서 가능하게 된 현상”이라고 했다.

시차 없이 보는 ‘역대급’ 회화 전시

클로드 로랭, ‘성 우르술라의 출항’, 1641년, 내셔널갤러리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 밖에 양 교수는 윌리엄 터너가 보고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전해지는 클로드 로랭의 ‘성 우르술라의 출항’, 영국의 ‘국민 화가’ 터너의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이별’,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으로 꼽히는 존 컨스터블의 ‘건초 마차’, 에두아르 마네의 ‘카페 콩세르의 한 구석’ 등 전시장 속 작품들을 책에서 자세히 소개한다.

티치아노의 1510~1512년경 작품 ‘여인(달마티아의 여인)’ 앞에 선 양정무 한예종 미술원 교수.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그는 “이 시대에 왜 이런 그림이 그려졌고, 어떠한 사회적 변화가 있었으며, 문명사적 의미는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러한 역사적 맥락이 담긴 좋은 작품들이 한두 점도 아닌 여러 점으로 이정도 회화가 온 적은 없었던 ‘역대급 전시’라는 생각이 든다”며 “시차 적응하는 고생 없이 맑은 정신으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9일까지. 7000~1만8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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