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자동차의 보급과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의 등장.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일상이 급격하게 변했던 20세기 초반 이탈리아 예술가들은 ‘미래주의 선언’(1909년)을 하기에 이른다. 산업화와 도시의 속도감을 찬양했던 이들의 예술은 러시아 미래파, 영국 소용돌이파 등에도 영향을 주며 미술사에 자리매김했다.
이 미래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움베르토 보초니의 ‘공간에서 연속하는 단일한 형태’ 청동 버전 조각품이 한국에 왔다. 이 조각품을 비롯해 이탈리아 근현대 미술작품 70여 점을 볼 수 있는 전시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이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 3층에서 최근 개막했다. 개념미술 작품으로 유명한 피에로 만초니의 ‘마법의 발판’, 아르테 포베라 예술 운동(1960년대 후반 이탈리아의 전위적 예술 운동으로 일상적 재료로 작업)의 주역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에트루리아인’도 전시에서 선보인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이탈리아 특유의 유머와 활기를 보여준다. 이탈리아 대표적 조각가인 마리노 마리니의 청동 조각 ‘말’은 쓸쓸하지만 따뜻한 서정성이, 자신의 발자국을 나무 상자 위에 놓은 만초니의 ‘마법의 발판’은 뒤통수를 치는 듯한 재치가 느껴진다. 전시장 구석에서는 수시로 전화가 걸려 오는 다니엘레 푸피의 전화기 작품 ‘런던 콜링’이 관객을 놀라게 만든다.
주한 이탈리아대사관, 이탈리아문화원이 주최한 이 전시는 이탈리아 외교협력부가 사용하고 있는 로마 파르네시나궁의 예술 작품 중 일부를 한국에 소개한다. 이탈리아 외교협력부는 1960년까지 로마 키지궁을 사용하다 그곳을 총리 관저로 내어주고, 지금의 파르네시나궁으로 이전했다.
금과 대리석으로 치장된 키지궁과 달리 소박한 파르네시나궁을 외교협력부 직원들은 약 40년간 그대로 사용했다. 그러다 독일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다 1998년 귀국한 움베르토 바타니 현 베네치아국제대 총장이 친분이 있던 미술가들에게 작품 대여를 요청해 예술 작품을 파르네시나궁 곳곳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파르네시나 컬렉션’은 지금도 소장품이 아니라 시기별로 대여하는 다른 작품들로 구성된다.
이탈리아의 저명 평론가 겸 큐레이터인 보니토 올리바(84)가 전시 기획을 맡았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그는 1995년 비엔날레 전시관에 한국관이 생기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한국을 13일 찾은 알레산드로 데 페디스 이탈리아 외교협력부 공공문화외교국장은 “이탈리아 미술은 로마, 르네상스, 바로크 이후에도 번성했다”며 “이탈리아 현대미술을 알리기 위해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8월 20일까지.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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