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교육의 목적은 입시가 아니라 직업입니다”…‘대한민국의 학부모님께’ 펴낸 이수형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6일 11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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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이수형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자녀 교육의 목적은 대학입시가 아니라 직업”이라고 말했다. 양회성기자 yohan@donga.com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1998년 행정고시 재경직에 차석 합격했다. 기획재정부 사무관으로 근무하며 승승장구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배운 ‘지식’은 세계무대에선 쓸모없었다. 공무원으로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에 참석했다가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떠났지만, 다른 학생들과의 토론에 밀리기 일쑤였다. “한국에서 뭘 배웠냐”는 자괴감이 들었다.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경제학과 교수로 일하다 2016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2020년부터 서울대 국제대학원 학생들의 진로를 상담하는 학생부원장으로 일하며 주위 기업에서 채용할만한 학생들을 추천해달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선뜻 추천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이 상태니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는 고민이 들었다. 지난달 25일 대중교육서 ‘대한민국의 학부모님께’(김영사)를 펴낸 이수형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47) 이야기다.

201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앨빈 로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왼쪽)과 이야기하는 이수형 교수. 로스 교수가 스탠퍼드 경제학과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 이 교수는 스탠퍼드에서 공부했다. 이 교수 제공.

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이 교수는 질문에 명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똑순이’ 자체였다. ‘왜 학부모를 대상으로 책을 썼냐’고 묻자 그는 “내가 기업인이면 한국 대학생들을 뽑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대학에서 졸업을 늦추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학생들을 많이 봤어요. 학생들에게 아무리 조언해도 안 바뀌기에 학부모를 상대로 책을 쓰자고 생각했죠.”

신간에서 그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취업 시장은 급변하는데 소위 명문대 입시에 목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쳐보니 ‘학벌 지상주의’의 폐해를 여실히 깨달았다”며 “서울대에 나와도 하고 싶은 일이 없고, 전문성이 낮으니 해외 취업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이수형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양회성기자 yohan@donga.com

그가 제시하는 건 ‘투자수익률’이다. 대학에 진학할 때 학교 순위를 높이기 위해 무분별하게 과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공학 등 취업률이 높은 과에 진학하라는 것이다. 화학공학, 컴퓨터공학 등 미국 취업 시장에서 높은 임금을 받는 과에 진학하는 것도 해외 취업에 도움이 된다. 그는 2021년 구글이 운영하는 세계 최대 규모 AI 경진대회 ‘캐글’ 데이터 분석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런 점을 깨달았다.

“졸업 후에 삼성에 취업하고 싶다고 막연히 말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하지만 삼성에 가서 어떤 업무를 하고 싶은지 정한 학생들은 거의 없죠.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정하면 삼성이 아니라 애플에서도 일할 수 있어요.”

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이수형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양회성기자 yohan@donga.com

그는 영어 유치원 등 영어 사교육비가 늘어나는 상황에 대해 “가계 경제에 무리가 돼 부부싸움을 벌이지 않는 수준으로만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스스로 자산을 투자하고 대출받는 성인에게 통계 지식이 필수인 시대라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되면 안 된다”고 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고교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초고난도 ‘킬러 문항’을 배제하는 정책에 대해선 “질이 떨어지는 문항이 출제되는 상황을 바꿔야한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학부모에게 당부했다.

“학교 성적만큼 정신적 건강을 생각해주세요. 아이들이 좌절하지 않는다면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어도 대학원 진학, 취업, 사회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학부모님께’ 표지. 김영사 제공.
‘대한민국의 학부모님께’ 표지. 김영사 제공.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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