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 “한국은 저를 존재하게 해준 나라”

  • 뉴시스
  • 입력 2023년 6월 19일 1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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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시원시원하면서도 섬세한 보잉(활 긋기)에 300년이 넘은 명품 바이올린이 고색창연한 소리로 응답한다.

한국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27)가 생애 처음으로 ‘어머니의 나라’를 찾았다. 클라라 주미강이 삼성문화재단으로부터 대여받아 사용하던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ex-스트라우스’도 ‘타이거’라는 새 별명으로 그와 함께 했다.

랜들 구스비는 재일교포 3세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2020년 데카 음반사와 전속계약을 맺으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스승 이차크 펄만을 연상케 하는 깊고 따듯한 음색과 말하는 듯 자유롭게 흐르는 음악이 강점이다. 그는 올해부터 삼성의 후원을 받아 주미강의 뒤를 이어 세계 3대 명품 현악기로 꼽히는 ‘ex-스트라우스’를 사용하고 있다. 20일에는 광주 아시아문화의전당에서 22일에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바이올린 리사이틀을 갖는다.

어머니가 자신의 가장 큰 영감의 원천이자 커다란 원동력이라고 말해온 그는 19일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세계에서 연주하는 일은 언제나 흥미진진해요. 한국은 저를 존재하게 해준 나라라는 점에서 더 각별하죠.”
구스비는 “이번이 첫 방한이라 매우 흥분된다”며 “어머니가 한국인이고, 나는 하프 코리안이라 더욱 감회가 크다”고 했다. “한국음식을 좋아해요. 이번에 호텔 주변에서 유명한 불고기집을 찾아갈 계획이에요. 한국에서는 골프가 인기라는데 저도 골프를 좋아해요. 골프채도 가져왔죠. 골프장이나 스크린골프장에 가보고 싶어요.”

구스비는 7살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항상 연습실에 함께 들어와 타이머로 시간을 재며 하루 3차례 1시간씩 연습하도록 했다. “어머니는 제가 성실하게 연습을 하도록 했죠. 연습시간에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셨죠. 연습을 끝내야 만화도 보고, 비디오게임도 할 수 있었어요.”

구스비는 “어머니와 가족들이 저에게 헌신한 시간과 돈, 희생에 대해 늘 생각한다”며 “어머니의 헌신이 없었다면 저는 바이올린을 연주하지도,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나타냈다.
그는 2010년 미국 스핑크스 청소년 콩쿠르에서 열네 살의 나이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2011년부터 바이올린의 대가 이차크 펄만의 여름 음악 캠프에 참여해 인연을 맺었고, 현재도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펄만의 지도를 받고 있다. “10년 넘게 펄만으로 부터 레슨을 받고, 제자로 있어요. 그에게 음악적으로 처음 경험하는 여러 교육을 받았고, 음악 외적으로도 영감을 받았죠.”

구스비는 “어느날 펄만이 ‘네 음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는데 대답하지 못했다”며 “펄만은 당시 ‘테크닉은 무의미하다. 음악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지를 알고, 그 후에 테크닉을 통해 이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랜들 구스비는 백인 중심의 클래식 음악계에서 유색인종의 뿌리를 찾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제가 7살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14살이 될 때까지 아프로 아메리칸의 작품을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코로나19 펜데믹 기간 미국에서는 흑인 인권운동이 벌어졌는데, 제가 속해있는 클래식계 안에서도 흑인이 소외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구스비는 2021년 첫 앨범 ‘루츠 ’를 발매했다. 자신의 개인적이고도 문화적인 뿌리를 과장 없이 펼쳐낸 음반이다.

“알려지지 않은 흑인 작곡가들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프로젝트였죠. 유명한 곡들과 달리 이런 곡들을 출판되지 못했고, 자필 악보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요. 소실되거나 찢어지기도 해 악보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죠. 아프로아메리칸 작곡가들을 찾아내 조명하는 게 제 사명이라고 느껴졌어요. 의미 있고 제 삶과 연관 있는 한국과 일본의 작곡가들도 찾아 연주해보고 싶습니다.”

구스비는 이번 내한공연에서 줄리아드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온 피아니스트 주 왕과 함께 자신의 신념을 담은 개성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프랑스 여류 작곡가 릴리 불랑제의 두 개의 소품으로 시작해 프랑스-재즈-블루스의 매력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라벨 바이올린 소나타 2번으로 이어진다. 흑인 클래식 작곡가 윌리엄 그랜트 스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을 지나 베토벤의 역작인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로 공연을 마무리한다.
구스비는 이번 공연에서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ex-스트라우스’를 사용한다. “1월부터 사용하고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타이거 우즈의 이름을 따서 별명을 붙여줬죠. 소리가 확실히 달라요. 밝으면서도 매우 풍부하고, 초콜릿에 가까운 다크한 매력을 동시에 갖고 있죠. 원래 현의 장력이 세고 직선으로 꽂히는 날카로운 소리였는데 텐션을 낮추고 풍성한 소리를 내도록 튜닝했어요.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콘서트장에서 만나요.”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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