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 첫사랑, 첫 꽃, 첫 낙엽… 멋있어도 먼저 나와야 찍힌다[청계천 옆 사진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8일 11시 00분


코멘트

[백년 사진 No.13 ]

▶저의 고향은 아니지만 만약 시골에 가서 살아야 한다면 살고 싶은 곳이 한 곳 있습니다. 그곳에는 역사 유적지도 있고, 봄이면 동백이 흐드러지게 피고 겨울에는 순백의 고니들이 떼로 몰려와 월동을 합니다. 녹차밭도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깨끗한 들판에서 나오는 쌀로 만든 흰밥과 각종 해산물과 육고기를 재료로 내놓는 한정식도 가성비가 높습니다. 공기도 좋고 산책을 할 수 있도록 바닷가에 데크도 잘 깔아놨습니다.

이곳은 신문과 방송에 가끔 소개되기도 하지만 제가 가서 본 풍경에 비해서는 빈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닙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기자들이 문제였습니다. 처음 나온 거나 가장 많은 것만을 보도하는 습성 때문입니다. 기자들은 첫 눈, 첫 꽃, 첫 낙엽을 사랑하는 거 같습니다. 두 번째라도 보도되려면 폭설이거나 흐드러진 꽃밭, 산을 가득 채운 낙엽이어야 관심을 갖습니다. 중간쯤 되는 풍경에는 시선과 지면을 잘 안 주는 거죠. 새로운 거나 가장 큰 것만 좋아하는 습성이 인생 살아가는데 좋은 건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 기자들이 저렇게 멋진 장소에 끊임없이 주목하지 않는 이유는, 그곳이 기자들이 생활하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KTX가 직행하지 않아 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가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걸리는 곳입니다. 기자들 근처의 사소한 축제는 신문에 실릴 수 있어도 지방의 큰 축제가 소홀하게 다뤄지는 것도 이런 매커니즘 때문일 겁니다. 다행히 요즘은 SNS로 그 지역을 다녀온 관광객과 시청 홍보팀이 많은 사진과 포스팅을 올려서 세상의 주목도 늘어나곤 있습니다.

▶이번 주 [백년사진]은 새 학기 첫 등교 사진입니다. 1923년 4월 3일 자 동아일보 지면입니다.



<희망에 넘치는 신학기>

새 학기가 되었다. 희망에 넘치는 새 학기가 되었다. 경성 시내에서는 소학교 중학교 전문학교를 물론하고 어제 2일에 일제히 시업식을 거행하였다. 인생의 가장 좋은 대는 소년시절이오 이때에는 아무 것보다도 배호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다. 배호기 곳하면 희망이 많고 배호지 아니하면 남과 같이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격심한 입학난의 싸움에 승리를 얻어 더 많은 희망을 가지고 입학이 된 학생제군은 배워야 할 때이다. 열심으로 공부하여야 될 이 때이다. 사진은 어제 오전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부속 보통학교 정문에서)

▶새학기 등교 사진을 설명하는 글에서 ‘배우다’는 표현을 ‘배호다’고 썼었네요.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이 소년기이고 이 때는 배우는 일이 가장 큰 일이며, 배워야 남들과 함께 살아 갈 수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사진은 100년 전 4월 2일 서울의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부속 보통학교 개학에 맞춰 그날 오전 학교로 들어가는 여학생들의 뒷모습입니다. 검정저고리와 고무신을 신은 여학생들이 학교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일제 시대 신학기의 시작은 지금과 달리 4월이었습니다. 지금도 일본은 4월에 학기가 시작됩니다. 이날 전국에서 수많은 학교들이 개학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딱 한군데의 학교 개학식 풍경이 지면에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가는 학교 중 하나였을 겁니다. 그리고 기자들이 가장 접근하기 좋은 서울에 있었을 것이구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는 1908년 4월 1일 조선 순종황제 칙령에 의해 현재 종로구 도렴동에서 개교한 ‘관립한성고등여학교’가 1911년 이름이 바뀌었으며 1951년 경기여자중학교와 경기여자고등학교로 개편되었다고 합니다.

사진의 오른쪽 세부
사진의 오른쪽 세부
▶제가 주목한 또 하나의 포인트는 사진 속 학생들 중 누구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요즘 제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초상권에 대한 답이 100년 전 사진에 있었습니다.

굳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도 활기차고 당당한 발걸음에서 신학기의 시작과 희망이 느껴집니다. 지금의 사진기자들과는 사진 촬영 접근법이 다르네요. 지금은 너무 많이 학생들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다 보니 인권문제와 충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학교에서 기자들이 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왜 우리는 학생들의 얼굴을 앞에서 찍고 모자이크를 하는 걸까요? 학생들의 얼굴은 언제부터 신문에 실렸을까요? 앞으로 유심히 자료를 한번 들춰볼 생각입니다. 새로운 프로토콜이 필요한 시대니까요. 과거 사진에서 한 수 배웠습니다.

▶여러분은 100년 사진에서 뭐가 보이시나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