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고독의 우물에서 명작 퍼올린 천재 작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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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K.딕의 말/필립 K.딕 데이비드 스트레이트펠드 지음·김상훈 옮김/216쪽·1만7000원·마음산책

‘공상과학(SF)계의 셰익스피어’라는 찬사를 얻었지만, 생전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겪으며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한 비운의 천재. 일평생 160여 편의 소설을 발표했고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년), ‘토탈 리콜’(1990년)의 원작자이지만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렸던 작가. 책은 불안과 고독의 우물에서 글을 길어 올린 필립 K. 딕(1928∼1982)의 생전 인터뷰 모음집이다. 인터뷰 내용을 따라 그의 생애를 들여다본다.

딕이 SF에 빠지기 시작한 건 열두 살 무렵이다. 과학잡지를 사기 위해 들른 서점에서 우연히 SF 잡지를 집어든 게 계기가 됐다. SF의 매력에 빠진 그는 “눈에 띄는 대로, 닥치는 대로 SF 작품을 읽었다”고 말한다.

그는 1952년 단편 ‘루그’를 통해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약 30년 동안 44편의 장편과 120여 편의 중단편을 발표했다. 다작을 한 이유에 대해 그는 “먹고살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늘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출판업계의 대우에 대해 “비인간적이고 수치스럽다”고 말할 정도로 평가절하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글 쓰는 게 정말로 좋다. 내가 창조한 등장인물들을 사랑한다. 그들 모두가 나의 친구다. 그래서 책을 탈고하면 상실감으로 인해 우울증에 빠질 정도”라고 고백한다.

딕은 “내 소설의 주인공들은 본질적으로 반(反)영웅”이라며 “내가 강자가 아니라서 약자에게 공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전체주의가 20세기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여겼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전체주의를 경계하는 것을 주요 작품 주제로 삼았다.

딕은 평생 5명의 여성과 결혼했지만 작가로서 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한 배우자는 없었다. 지독한 우울증을 겪으며 그는 신경자극제인 암페타민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약물에 취한 채 장편소설을 써내려갔다. 그는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현실 세계에서 내게 위안을 주는 친구들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외로운 천재는 1968년 출간한 자신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가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년)로 개봉되기 3개월 전 눈을 감았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필립 k.딕의 말#천재 작가#공상과학계의 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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