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타고난 차이 보완해야 기회도 평등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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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로또/캐스린 페이지 하든 지음·이동근 옮김/416쪽·2만3000원·에코리브르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은 있지만 그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부모와 재산, 교육 수준 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는지는 각자의 운명에 달렸다.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 교수이자 발생·행동유전학 전문가인 저자는 여기에 유전적 차이도 불평등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는다. 그는 또 다른 선천적인 요소인 유전자에 따른 차이가 사회 불평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모색한다.

교육과 관련 있는 유전자들의 변이를 수치화하고 일정 규모의 은퇴한 미국 70대 백인을 조사한 결과 이 유전자 수치가 상위 25%에 있는 사람은 하위 25%에 있는 사람보다 재산이 평균 47만5000 달러(약 6억2000만 원) 많았다. 또 다른 조사에선 이 수치가 상위 25%인 집단은 하위 25%인 집단보다 대학 졸업률이 4배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기준 미국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근로자의 임금은 고졸 근로자보다 평균 1.7배 많았다.

불평등의 유전적 차이를 따지는 건 자칫 우생학이나 인종차별주의로 흐를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게르만 민족주의를 강조한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비롯해 많은 사례가 있다. 저자는 인종 간 부(富)의 차이는 유전적 차이로 설명할 수 없다고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그 대신 유전 데이터를 적극 활용해 유전적 차이로 혜택받지 못한 이들을 의료와 교육 등에서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를 개선하려면 사람은 똑같이 태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유전적 차이를 무시하면 해석의 공백이 남고, 정치적 극단주의자는 이 공백을 우생학 등을 통해 입맛대로 메우려 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유전적 차이를 고려해 보다 견고한 사회안전망을 만들 수 있다면 그 방향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다만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인간을 너무 촘촘한 제도와 기준 안에서 나누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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