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팔굽혀펴기 1000번 하며 단련한 대금… 들어보셔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죽향 이생강 22일 ‘일이관지’ 공연
구슬 같은 새소리 표현 백미 꼽혀

대금 연주의 대가 이생강 명인은 “우리 음악이 훗날 사라질까 봐 두렵다”며 “온 국민이 ‘우리 것’을 아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여생의 업”이라고 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대금 연주의 대가 이생강 명인은 “우리 음악이 훗날 사라질까 봐 두렵다”며 “온 국민이 ‘우리 것’을 아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여생의 업”이라고 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금도 하루 4시간 잡니다. 대금부터 소금, 피리, 태평소, 퉁소, 단소 등 관악기를 1시간씩만 연습해도 7∼8시간은 훌쩍 가요.”

대금 연주의 대가로 꼽히는 죽향(竹鄕) 이생강 명인(86)은 지난달 27일 서울 성북구 전수원에서 “남들 잘 때 다 자고 놀 때 다 놀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겠느냐”라며 이렇게 말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 보유자인 그는 이생강류 대금산조의 창시자다. 맑은 음색과 구슬 같은 새소리 표현이 백미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명인은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서 22일 오후 7시 반 열리는 국악 명인 기획공연 ‘일이관지(一以貫之)―예술로 꿰뚫다’에서 독주곡인 대금산조를 연주한다. 피리 이종대, 아쟁 이태백과 합을 맞춰 시나위도 선보인다.

그의 등은 대나무처럼 꼿꼿했다. 한 가락 시연한 아리랑을 한 호흡으로 깔끔하게 불었다.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올곧은 모습은 치열한 관리 덕이다. 그는 “예전처럼 격한 운동은 못하지만 물 없는 욕조에서 팔굽혀펴기를 매일 천 번 넘게 한다”며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일본에선 일본말을, 한국에선 한국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동네 애들한테 두들겨 맞던 게 싫어 오랫동안 유도를 한 게 체력의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이 명인은 다섯 살에 처음 단소를 잡은 후 ‘80년 국악 외길’을 걸었다. 일본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단소를 불던 아버지를 위로해 주고자 따라 분 것이 시작이었다. 1945년 광복 뒤 귀국한 그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의 권유로 대금 연주가 고(故) 한주환 선생을 만나 본격적으로 대금을 배우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야시장에 나가 은행 앞 계단에서 피리를 불었어요. 아버지가 만든 피리를 팔며 푼돈을 벌었죠. 사람들은 연주에 감탄하면서도 저를 ‘피리쟁이’라고 부르며 무시했지만 처음으로 내 이름 석 자 걸고 연주한 그때를 잊지 못합니다.(웃음)”

국악 관악기 7종을 섭렵한 그에게도 대금은 특별하다. 음악적 표현에 한계가 없는 우리 고유의 악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대금에는 중·임·무·황·태 5음계뿐이지만 미분음으로 나눠 불면 무궁무진한 음을 낼 수 있다”며 “중국엔 퉁소, 일본엔 단소와 흡사한 악기가 있지만 대금은 우리나라에만 있어 선조의 얼이 담긴 소중한 악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남은 생도 대금 연주와 제자 양성에 바치겠다고 했다. 자신의 호 죽향을 따르겠다는 것. 죽향에는 대금의 재료인 대나무라는 의미와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담겨 있다.

“자식들에게 ‘나 죽으면 어디 묻지 말고 대나무 속에 넣어 달라’고 했어요. 이승 아닌 곳에서도 대금과 함께하고 싶어서요. 힘닿는 때까지 대금을 놓지 않을 겁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대금#죽향 이생강#일이관지 공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