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차 변호사가 쓴 ‘인간의 법정’ 뮤지컬이 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4일 11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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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인간의 법정’을 쓴 작가 조광희. 동명의 뮤지컬 각본도 작업했다. 안철민 기자

‘자신을 구매한 인간을 살해한 안드로이드(Android·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가 있다. 그 로봇은 어떻게 처벌해야 할까. 인간 아닌 로봇을 법정에 세울 수 있을까.’

지난해 출간된 소설 ‘인간의 법정’은 이 물음에서 시작한다. 인간을 살해한 안드로이드를 법정에 세우면서 역으로 인간성의 본질과 경계를 탐구한다. 22세기를 배경으로 SF와 법정물을 결합한 소설 ‘인간의 법정’이 무대로 재탄생한다. 2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초연되는 동명의 뮤지컬에서다. 소설 원작뿐 아니라 뮤지컬 각본까지 쓴 조광희 작가(56)를 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올해 28년 경력의 변호사이기도 하다.

“처음엔 살인을 저지른 안드로이드가 재판을 받는 이야기로 쓰려 했어요. 근데 제가 법률가잖아요. ‘안드로이드가 인간이 아닌데 법정에 세울 수 있을까’에서 생각이 멈추더라고요. 그러다 ‘안드로이드의 재판 받을 자격’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자격은 무엇일까’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됐습니다.”

조광희 작가가 쓴 소설 ‘인간의 법정’. 국내뿐 아니라 베트남, 독일 등에 수출됐다. 솔출판사 제공
조광희 작가가 쓴 소설 ‘인간의 법정’. 국내뿐 아니라 베트남, 독일 등에 수출됐다. 솔출판사 제공


2018년 첫 장편소설 ‘리셋’을 내고 지난해 ‘인간의 법정’까지. 장편소설 두 편을 출간한 작가지만 뮤지컬 각본을 쓴 건 처음이었다. 뮤지컬 ‘그날들’ ‘투란도트’ 등을 만든 장소영 음악감독이 직접 ‘인간의 법정’ 판권을 구입하면서 시작됐다. 장 감독은 그에게 각본도 함께 써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무대에서 구현한다는 건지 감이 안 왔어요. 그런데다가 각본까지 써달라는 거예요. 무대나 음악을 잘 모르는 제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난감했죠.”

영화 ‘멋진 하루’ ‘밤과 낮’ 등을 제작한 경험이 있던 그에겐 뮤지컬 각본보다 영화 시나리오가 익숙했다. 처음엔 시나리오를 쓴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소설의 장면을 ‘씬’으로 만들고 10여 명이 넘는 등장인물도 6명으로 줄였다. 뮤지컬 넘버의 가사도 직접 썼다.

“한때 문학청년을 꿈꾸며 시를 썼는데 대학 졸업 후 30년 동안 한 번도 시를 쓴 적이 없었어요. 다시 시를 써보자는 마음으로 가사를 써내려갔죠. 메인 넘버 ‘내 피는 파랑’은 제일 먼저 떠오른 가사입니다.”

28일 초연되는 뮤지컬 ‘인간의 법정’ 포스터.
28일 초연되는 뮤지컬 ‘인간의 법정’ 포스터.

소설과 뮤지컬. 글을 쓴다는 건 같지만 완전히 다른 작업이다. 소설을 쓸 때 작가는 홀로 남게 된다. 혼자 하는 일이기에 장점도 있지만 외로울 때도 많다. 하지만 뮤지컬은 음악과 배우, 스태프와 협업해야 한다. 고려사항은 많지만 협동이 주는 즐거움도 있다.

“제가 쓴 글을 배우들이 말하고 노래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걸 보면서 굉장히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혼자 쓰는 소설하고는 또 다른 작업이었어요. 이런 즐거움이라면 뮤지컬 작업을 계속 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하더군요.”

‘인간의 법정’은 영상화 판권도 팔린 상태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을 만든 나우필름과 영화 ‘부산행’ ‘반도’의 레드피터가 ‘인간의 법정’을 드라마로 공동 제작한다. 이를 위해 그는 현재 ‘인간의 법정’ 후속편을 쓰고 있다. 가제는 ‘인간의 도시’다.

소설, 뮤지컬, 드라마를 넘나드는 작가로 살지만 그는 지금도 법무법인 원에 소속된 현직 변호사다. 1990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후엔 주로 영화를 비롯한 문화예술 분야에 법률자문을 해왔다. 현재 영화 산업 분야에서 사용되는 표준 계약서 대부분을 초안했고 2001년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등급 분류보류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도 이끌어냈다. 한때 잠시 변호사를 그만두고 영화사 봄의 대표이사로도 활동한 적도 있었다.

“영화 일을 오래 해왔지만 결국 본업은 변호사입니다. ‘후문학파’라는 말이 있대요. 선(先)인생, 후(後)문학. 인생을 먼저 살고 글은 나중에 쓴다는 거죠. 4년 전에야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니 본격적으로 글을 써온 시간은 짧았지만 변호사로서 여러 삶을 경험했기에 지금 글 쓰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글은 계속 쓰겠지만 변호사 일도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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