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절벽에 피어난 한 떨기 연꽃… 해수관음의 미소[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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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산 보리암 일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섬들이 꿈결처럼 포근한 바다에 떠 있다.
남해 금산 보리암 일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섬들이 꿈결처럼 포근한 바다에 떠 있다.
여름철에 바닷가를 찾으면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자식들을 보살피는 어머니처럼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은 왜 바닷가 근처에 있는 것일까. 한국의 3대 관음성지는 경남 남해 금산 보리암, 인천 강화 낙가산 보문사, 강원 양양 낙산사 홍련암이 꼽혀 왔다. 이 밖에도 전남 여수 향일암, 부산 기장 해동용궁사 등 바닷가의 절에는 어김없이 관음의 전설이 내려온다. 해수관음상은 소문난 기도처일 뿐 아니라 탁 트인 바다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포인트로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다.》
● 남해 보리암의 일출
보리암은 남해의 명산인 금산 정상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서면 남해 상주은모래비치를 중심으로 호도, 애도, 해운산, 목도, 승치도, 삼여도, 소치도 등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섬들이 꿈결처럼 떠다닌다. 해수관음상의 미소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풍경이다.

보리암 일출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 금산에 올랐다. 낮에는 금산 입구부터 운행하는 사찰 버스(오전 8시∼오후 4시 운행)를 타고 올라가야 하지만, 새벽에는 정상 부근인 제2주차장까지 승용차로 올라갈 수 있다. 차에서 내린 후 금산의 맑은 아침 공기를 느끼며 15분 정도 걸으니 보리암 뒤편의 대장봉과 화엄봉, 형리암의 깎아지른 바위가 나타난다.

남해 보리암 해수관음상.
남해 보리암 해수관음상.
보리암의 제일 양지바른 곳, 남해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장소에 해수관음상과 삼층석탑이 서 있다. 해 뜨기 전 새벽인데도,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절을 하고 탑돌이를 하고 있다.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에게 자비와 도움을 청하는 간절한 몸짓이다. 화엄경에 따르면 중생이 온갖 고뇌에 시달릴 때 한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그 소리를 듣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끊임없이 속삭이며 기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어머니들이다.

해수관음상이 바닷가에 많이 세워진 까닭은 예로부터 관음보살이 인도 남동쪽 해안에 있는 ‘포탈라카’산의 굴속에 살고 있다고 믿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가 인도에서 티베트를 거쳐 중국 한국 일본으로 퍼져 나가면서, 민중은 바닷가 산에 수많은 관음신앙의 성지를 만들었다.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도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달라이 라마의 집무실이 있는 라싸의 ‘포탈라궁’도 포탈라카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달라이’는 ‘큰 바다’란 뜻이다. 포탈라카는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보타락가(普陀落迦)’라는 한자로 음차됐다. 중국 저장성 닝보(寧波) 인근 푸퉈(普陀)산은 대표적인 관음성지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상 대사가 신라 문무왕 11년(671년)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관음굴을 지었다는 양양 낙산사 홍련암을 최초의 본격 관음도량으로 본다. 국내 3대 관음성지인 양양 낙산사의 ‘낙산’, 강화 보문사의 ‘낙가산’, 남해 보리암의 ‘보타전’ 등은 모두 ‘보타락가’라는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다.

보리암이 있는 금산의 풍경은 계절에 따라 비단으로 수놓은 듯 변화무쌍하게 변한다. 금산을 오르다 보면 쌍홍문, 망대, 단군성전, 좌선대, 화엄봉과 같은 전설과 이야기가 담긴 명소들이 즐비하다. 고려 말 이성계가 보리암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열었다는 기도처도 남아 있다. 특히 슬픈 사랑의 전설이 담겨 있는 상사암(想思巖) 절벽은 보리암을 색다른 각도로 조망하고, 파노라마처럼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곳이다.
● 동아시아 해상 실크로드의 관음성지
강화 석모도 낙가산 중턱에 있는 눈썹바위 해수관음상.
강화 석모도 낙가산 중턱에 있는 눈썹바위 해수관음상.
강화 석모도 낙가산 중턱에 자리한 보문사 뒤편에는 ‘눈썹바위 마애관음보살상’이 있다. 높이 9.2m, 폭 3.3m 규모의 거대한 해수관음상이 낙가산 중턱에 가로로 길게 튀어나온 눈썹바위 아래 그야말로 눈동자처럼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마애불은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관음상의 시선을 따라 내려다본 드넓은 서해 바다는 일찍이 강화 8경으로 알려졌을 정도로 절경이다.

신라시대에 세워진 강화 보문사는 고려시대 때 관음성지로 크게 번창했다. 보문사의 번창은 해상 무역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인도를 출발해 믈라카 해협과 베트남, 중국 광저우까지 진출한 인도 상인들이 중국 연안의 닝보를 거쳐 고려의 수도 개경의 관문인 벽란도까지 진출했다. 강화도는 벽란도의 관문 역할을 하던 곳이다. 옛날에 배는 물건을 대량으로 수송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무역에 적합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육로에 비해 난파 등의 위험이 높아 항해는 늘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사람들은 항해의 두려움과 무서움을 이겨 내기 위해 많은 신들에게 빌었다. 그중에 으뜸은 관세음보살이었다. 그래서 동아시아 해상 실크로드를 오가던 뱃사람들은 중국 닝보, 강화도 등 바닷가의 산에 관세음보살이 살던 인도의 보타락가산을 재현해 냈다.

강화 보문사는 절 앞까지 버스가 도착한다. 그러나 좀 더 드라마틱하게 해수관음상을 만나는 방법은 석모도의 해명산과 낙가산을 넘어서 보문사로 가는 길이다. 들머리인 전득이고개에서 숲을 파고든 가파른 산길에 오른 지 10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인다. 개펄을 쓰다듬는 바다와 점점이 흩어져 있는 무인도까지 서해 특유의 풍경이다.

해명산에서 낙가산까지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능선길은 순하다. 낙가산 정상 표지석을 지나 새가리고개를 넘자 보문사의 전각들이 내려다보인다. 너럭바위 바로 아래가 해수관음상을 모신 눈썹바위지만, 낙가산 정상에서 바로 내려갈 수는 없다. 다시 보문사까지 내려와서 일주문을 지나 계단을 오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무렵 눈썹바위 마애관음보살상에 다다랐다. 연꽃 위에 좌정하여 감로수 병을 든 보문사 해수관음상 앞에는 소원을 담은 수많은 연등이 걸려 있다.

한옥으로 지은 강화 성공회성당.
한옥으로 지은 강화 성공회성당.
서울의 관문인 강화도는 종교를 비롯해 외래 문물 유입의 최전선이기도 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초창기 개신교의 전파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곳도 강화도다. 1900년 지어진 강화 성공회성당은 한옥과 불교 사찰, 서유럽 바실리카 양식을 결합한 독특한 건물이라 눈에 확 띈다. 영국 성공회 선교사가 백두산의 나무를 가져다 지은 이 성당은 불교의 사찰처럼 일주문과 범종을 갖추고 있다. 그런가 하면 팔작지붕 용마루에 올라앉은 십자가, 팔작지붕 합각 아래 ‘天主聖殿(천주성전)’ 현판, 기둥에 걸려 있는 ‘三位一體(삼위일체)’ 주련, 제단 위에 새겨진 ‘萬有眞原(만유진원)’ 등 한자로 해석한 성경 구절이 성당임을 알게 해준다. 내부로 들어가면 고색창연한 샹들리에가 개화기 영화 세트장에 온 느낌을 준다.

조양방직 공장을 리모델링한 카페.
조양방직 공장을 리모델링한 카페.
섬 여행은 강화읍 향나무길 ‘조양방직’ 카페에서 차 한잔을 하며 마무리하면 좋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민족자본이 세운 방직공장을 카페로 단장했다. 1958년 폐업한 뒤 60년가량 제대로 활용되지 않던 건물의 골조를 그대로 살려 추억 어린 옛 생필품과 예술품을 진열한 빈티지 미술관은 세련된 멋을 찾는 젊은이도, 추억을 되새기는 어르신도 함께 즐기는 공간이 된다.


남해·강화=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남해#보리암#해수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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