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사람 만나는 게 두렵던 내향인, 사람 속으로 뛰어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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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가서 사람 좀 만나려고요/제시카 팬 지음·조경실 옮김/456쪽·1만6800원·부키

식당에서는 반드시 구석 자리에 앉는다. 어느 모임에 가든 가장 먼저 자리를 뜬다. 여러 사람이 쳐다보면 말을 하다가 머리가 하얘진다. 갖은 핑계를 대 약속을 취소한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이라면 ‘내향인’일 가능성이 높다. 이 책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간다. 그는 스물두 번째 생일날 대학 친구들이 그의 방에 몰래 숨어 있다가 한꺼번에 나타나 깜짝 파티를 열었을 때 울음을 터뜨렸다. 인사만 주고받던 친구들까지 자신의 침대에 앉아 있는 상황이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가 감동을 받아 우는 줄 알았지만 그의 머릿속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가득했다. ‘이 사람들 도대체 언제 나가지?’

책은 극심한 내향인인 저자가 1년간 ‘외향인으로 살기’에 도전한 이야기다. 저자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데다 친한 친구마저 타지로 이사를 가 삶의 의욕을 잃은 상태였다. 철저한 고독에 휩싸인 그는 내향적 성향 탓에 과거에 잃었던 수많은 기회를 돌아보게 된다. 비행기 옆자리의 두 남성이 가벼운 잡담을 하다 비행기에서 내릴 즈음 서로의 생일파티로 초대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생각한다. ‘비행 6시간 만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나를 스친 수백 명을 무시하며 얼마나 많은 걸 놓쳤는가.’

성격유형지표(MBTI)에서 앞글자 E는 외향형인 Extrovert, I는 내향형인 Introvert를 뜻한다. 저자는 혼자 시간을 보내길 선호하는 내향형에 더해, 부끄러움까지 탄다는 뜻에서 자신을 ‘신트로버트(Syntrovert)’라고 정의했다. 신트로버트의 앞글자 S는 부끄러워하는 것을 뜻하는 Shy에서 따왔다. 구글 이미지
성격유형지표(MBTI)에서 앞글자 E는 외향형인 Extrovert, I는 내향형인 Introvert를 뜻한다. 저자는 혼자 시간을 보내길 선호하는 내향형에 더해, 부끄러움까지 탄다는 뜻에서 자신을 ‘신트로버트(Syntrovert)’라고 정의했다. 신트로버트의 앞글자 S는 부끄러워하는 것을 뜻하는 Shy에서 따왔다. 구글 이미지
외향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저자가 벌인 행동은 황당무계하다. 처음 시도한 건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것. 초밥집 옆자리에 앉은 프랑스 남성, 버스 안에서 스무고개를 하고 있는 할머니와 아이, 길거리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주인 등 대상은 다양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처음 만난 이들과 맥주를 마시고 전시회도 간다. 낯선 이와의 대화가 어느 정도 편해지자 그는 대규모 코미디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스탠드업 코미디까지 자처한다. 그의 개그에 아무도 웃지 않던 아찔한 순간도 웃으며 곱씹을 수 있는 추억이 됐다.

책은 일종의 심리치료서이기도 하다. 저자가 외향인이 되기 위해 자문을 한 심리치료사, 언어치료사, 심리학 교수의 조언은 실용적이다. ‘무작정 정면 돌파’가 아닌 이론에 근거한 치료법이기에 내향적 독자들이 실천해 보기도 좋다. 그중 가장 도발적인 시도는 노출 치료. 관계불안을 겪는 환자를 거절당할 게 분명한 최악의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는 심리치료다. 저자는 교수 지침에 따라 영국 런던 한복판에서 아무나 붙잡고 “영국에 여왕이 있나요? 있다면 이름이 뭐죠?”를 묻는다.

책장을 넘기며 이런 황당한 행동보다 더 놀라운 건 저자와 마주친 사람들의 반응이다. 길거리에서 붙잡고 영국 여왕이 누구냐고 물어도, 지하철에서 불쑥 ‘재킷 어디서 샀느냐’고 말을 걸어도 그녀를 미친 사람 취급한 이는 아무도 없다. 저자는 외향인이 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을 통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인과 관계를 맺을 준비가 돼 있다는 결론을 몸소 도출한다. 저자는 말한다. ‘누구도 먼저 손을 흔들진 않아요. 하지만 상대방이 손을 흔들면 모두가 손을 흔들어요.’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내향인#사람#심리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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