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軍 포로감시원 활동한 할아버지, 식민지 모두의 비극 보여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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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삶 다룬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펴낸 외손자 최양현씨
일제강점기 일본군 생활 할아버지, 5년간 처절했던 비극의 현장
원고지 1000장 분량 기록 남겨… 피해자 아닌 가해자로 낙인
평생 죄책감에 가슴속 응어리 “눈물의 역사, 내 가족 얘기였네요”

15일 경기 파주시 효형출판사에서 만난 최양현 씨가 외할아버지 고 최영우 씨의 육필원고를 소개하고 있다. 1942년부터 5년간 
일본군 군속으로 태평양전쟁에 동원된 외조부는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보고 싶다”고 썼다. 파주=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5일 경기 파주시 효형출판사에서 만난 최양현 씨가 외할아버지 고 최영우 씨의 육필원고를 소개하고 있다. 1942년부터 5년간 일본군 군속으로 태평양전쟁에 동원된 외조부는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보고 싶다”고 썼다. 파주=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나는 일제강점기 일본군 소속 연합군 포로감시원이었다. 그때 쓴 원고를 남기니 언젠가 한 번 읽어다오.”

다리가 서서히 썩어가는 폐색성 말초 혈관병을 앓던 외할아버지 최영우 씨(79)는 2002년 별세 직전 외손자 최양현 씨(43)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그의 기억 속 할아버지는 늘 원고지와 볼펜을 손에 쥐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을 삼킨 채 글만 써내려갔다. 할아버지는 200자 원고지 1000여 장에 이르는 육필원고를 남겼다. 언젠가 한 번쯤 누군가 자신의 삶을 들여다봐주기를 바라며.

이로부터 10년이 흐른 2012년 최 씨는 자신의 자취방에 보관하던 원고 보따리를 풀었다. 영화 제작사를 세우고 이야깃거리를 찾던 때였다. 볼펜으로 빽빽이 눌러 쓴 할아버지의 원고에는 전쟁의 기억이 생생히 담겨 있었다. 경기 파주시 효형출판사에서 15일 만난 최 씨는 “식민지 조선인이 겪은 비극의 역사가 뉴스에서만 보던 남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내 가족의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10년간 일본과 네덜란드의 국가기록물을 뒤져 할아버지 이름이 적힌 조선인 포로감시원 명단을 확보하고 할아버지의 생애를 재구성해 신간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효형출판)를 11일 펴냈다.

“포로감시원으로 꿈과 젊음을 잃어버린 할아버지의 시간을 기록하고 싶었어요.”

일제강점기 발명가를 꿈꾸던 20세 청년은 “군속(군대 소속 공무원)으로 자원하면 맏형과 막냇동생이 일본군에 끌려가지 않아도 된다”는 친지 얘기를 듣고 1942년 5월 군속에 지원했다. 일본군이 점령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역에서 연합군 포로를 관리하는 감시원으로 발령이 났다. 이것이 그에게 평생의 죄책감을 안길 줄은 몰랐다. 무더운 날씨에 쓰러져가는 포로들을 바라보며 그는 ‘이곳은 죽음의 철도다, 나는 이곳에서 무얼 하는가’라고 썼다. 인도네시아의 일본군 위안소에서 조선인 여성들을 마주한 뒤 그는 ‘그들의 고통이 나의 뼛속까지 사무친다’고 기록했다.

1945년 8월 일본 패망 직후 그에게는 전쟁범죄자 낙인이 찍혔다. 식민지 조선인이던 그가 일본의 전쟁범죄에 가담한 혐의를 받게 된 것. 광복의 기쁨을 누릴 새 없이 싱가포르 창이수용소에 1년 6개월간 갇힌 그는 “나는 전쟁범죄자인가 아닌가”를 수없이 되뇌며 창살 너머 민가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 순간을 기록했다. 할아버지의 원고를 읊던 최 씨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고작 22, 23세 된 청년이 어떻게 홀로 견뎌냈을까요. 창살 밖 밥 냄새 나는 평범한 일상이 할아버지에게는 간절한 꿈이었어요.”

1947년 연합군으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고 귀향했지만 뼈만 앙상하게 남은 그를 가족도 몰라봤다. 극도로 쇠약해져 가정을 꾸린 뒤에도 마땅한 직업을 갖지 못했다. 최 씨는 “펌프를 직접 만들 정도로 손재주가 좋았던 할아버지는 귀향 후 발명가라는 꿈을 포기한 채 말없이 살다 가셨다. 마음속 깊은 곳에 포로수용소 경험이 그늘로 자리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처절하게 기록하셨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자식들이라도 당신의 응어리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아니었을까요.”

원고에 담긴 고인의 마음이 전해진 걸까. 책을 가장 먼저 읽어본 외삼촌 최성두 씨(62)가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전쟁이 인생을 바꿔놓기 전까지 아버지도 나처럼 꿈 많은 청년이셨어. 우리 아버지가 가슴 속에 이런 이야기를 끌어안고 사셨구나.”

파주=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최양현씨#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할아버지 삶#日軍 포로감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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