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는 나약한 현대인 위로하고 힘을 주는 수호신”

민동용기자 입력 2021-09-19 07:31수정 2021-09-2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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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사는 법] 해태상(像) 7000여 점 모은 이인한 씨
돌로 된 해태상 7000여 점을 보유한 이인한 씨가 세계 최초 해태박물관을 조성 중인 경기 양평군 산자락에서 3일 해태상들과 함께 앉아 있다. 양평=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경복궁 석물에 반해 30여 년간 수집
수억 원짜리 중국 문화재급도 사들여
양평에 세계 최초 해태박물관 건립 꿈
“돌 기운 받아 좋은 일 많아지길”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서 태어나 보낸 6년이었다. 이인한 씨(65)의 반평생 ‘돌과의 사랑’을 결정지은 건.

“경복궁 인왕산 북한산을 만날 다녔어요. 돌도 보고 바위도 보고. 경복궁에 동물 모양 석물(石物)이 많잖아요. 보면 재미있고, 친근하고….”

이 씨는 세계에서 해태 석상을 가장 많이 보유한 사람일 것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동남아시아 유럽 등 수십 개국 해태상(像)을 7000여 점 소장하고 있다. 주먹만한 소품부터 등신대(等身大)까지, 1000년 전 것부터 최신 작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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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경기 양평군,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일종의 수장고에서 이 씨를 만났다. 고구려부터 조선시대, 중국 명(明) 청(淸)대, 150여 년 전 태국 것 등 해태상 500여 점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해태는 선과 악을 구별하고 화재 같은 재앙을 물리치며 상서롭지 못한 것을 누른다는 전설 속 동물이다.

“해태는 정의를 상징하고 복을 가져다주지요. 능(陵)이나 산소 앞 문관석(文官石)은 죽은 자를 위한다면 해태는 산 자를 위한 것입니다. 더 재미있지 않나요?”

이 씨에 따르면 옛 중국에서 사자(獅子)를 상상해 그려놓은 게 해태다. 광화문 앞 해태상을 보고 중국인들은 ‘사자상(像)’이라 한단다. 태국 ‘싱하’, 싱가포르 ‘머라이언’ 같이 사자를 수호동물로 삼는 동남아시아는 물론 유럽에도 사실상 해태상이 있다는 얘기다.

돌과의 연(緣)


해태상을 모으기 시작한 건 30대 초반인 1980년대 말이다. 오퍼상을 하던 이 씨는 서울 인사동에서 ‘조그맣고 오래된 돌’을 보고는 그냥 샀다. 이 씨는 “돌이 재미있으니까”라고 했다. 가격은 20만 원 정도였다.

“20만, 30만 원이면 하나 샀어요. ‘술 한 잔 안 먹고 이거 산다’는 생각이었죠. 한두 개, 서너 개 사다 보니 인사동이나 장안평 돌 장사들에게서 연락이 오는 거예요. 좋은 돌 나왔다고.”

해태상에 빠진 것도 다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인왕산 북악산 사방이 다 화강암 덩어리인 효자동에서 태어난 것도 연(緣)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외가가 있던 구의동은 개발이 한창이었다. 산을 깎아 길을 내고 터를 닦느라 주인 없는 산소가 파헤쳐졌다. 길바닥에 나동그라진 문관석을 보며 ‘아깝다. 참 예쁘게 생겼는데’ 하곤 생각했다. 이 또한 연이라는 것.

이후 브라스베드(brass bed·놋쇠 틀 침대)를 미국에 수출하는 가구제조업이 잘 되면서 해태상 수집은 궤도에 올랐다. 좋은 해태상이 나왔다는 말을 들으면 전국 어디든 달려갔다. 보기만 하면 샀다. 한꺼번에 100점을 산 적도 있다. 중국에 가서 문화재급 돌들을 뭉텅이로 구입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마냥 좋아서 샀는데 나중에는 ‘저건 내가 꼭 갖고 진열을 해야지’하는 의무감도 생겼다. 한 점에 몇 억 준 것도 있고, ‘몇 억을 주겠으니 팔라’는 것도 있다.

해태 관련 중국 서적을 돈 주고 번역해서 읽으며 해태를 공부했다. 지금은 ‘나보다 해태상을 더 잘 아는 사람이 한국에 누가 있을까’ 하는 수준이다. 그래도 여전히 정확히 어느 시대 것이라고 특정하기는 어렵다.

이인한 씨가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모습의 해태상들. 양평=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다 다른 해태상
이씨는 예술성이 뛰어나다면 현대적인 조각상도 거금을 던져 사들였다. 청와대 상춘재 안에서 발견된 조선왕궁 수호석과 같은 종류인 천록’(天祿). 노루를 닮았지만 머리에 뿔이 있고 전신이 비늘로 덮힌상상 속 동물로 왕실의 신성함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궁궐에 많이 설치됐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해태상은 뭐 하나 같은 게 없다. 손으로 조각한데다 돌마다 성질이 다르고 수백 년 비바람에 쓸리고 깎이며 독특한 얼굴이 생겨난다.

대부분 화강암으로 만든 한국 해태상은 위트가 있고 온화해 보인다. 다만 한국 해태상은 궁궐이나 절에 있던 것이 대부분이라 그 수가 적다. 경복궁의 많은 석물 중에도 있다. 옛 문헌에는 개라고 돼있지만 사실은 해태인 것도 있고, 해태의 한 종류인 천록(天祿 또는 天鹿)도 있다.

반면 중국 것은 사납고 세 보인다. 화강암보다는 옥 계통 대리석인 한백옥, 단단해서 풍화를 잘 견디는 철석, 세월이 흘러도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포천석 등을 선호한다. 중국산 화강암 해태상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불로장생하라는 뜻을 상징하는 복숭아를 들고 있는 해태도 있고, 새끼를 위로 떠받치고 있는 해태도 있지요. 옛날 중국 귀족이 말에서 내릴 때 쓰던 하마석(下馬石) 해태도 있습니다. 해태상에도 암수가 있어요. 동그란 구(球) 모양의 것을 발로 누르고 있는 건 수컷입니다. 세계를 지배하라는 상징이죠. 아기를 데리고 있는 게 있는 암컷이죠.”

7000점 넘게 샀지만 이 씨는 언제 누구에게서 얼마를 줬는지 대부분 기억한다. 애착이 가는 해태상을 꼽아달라고 했을 때 주저하던 까닭이다. 골동품 전문 경매 업체에서 물건을 내놓자고 했지만 거절했다. “젊었을 때는 물건 파는 걸 죄악시했어요. ‘진정한 컬렉터가 무슨 물건을 팔아’ 하는 생각이었어요.”

30년 넘게 석물을 수집하다 보니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10여 년 전 석등이나 벅수(돌로 된 장승) 같은 문화재급 석물을 구입했다. 다시 그 판매상을 찾아갔지만 물건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모두 경찰서에 있었다. 도굴꾼이 내다 놓은 장물이었던 것이다.

세계 최초 해태박물관의 꿈

국내 최초의 해태박물관을 꿈꾸는 이씨는 돌조각과 함께 할 때가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양평=이훈구 기자 ufo@donga.com

40대 때는 세계 최초 해태박물관을 짓자는 포부가 있었다. 6년 전 전남의 한 기초단체가 약 9만9000㎡(3만 평) 터에 해태테마공원을 짓겠다고 했다. 이 씨는 해태상 1000여 점을 기탁했고 2년 뒤 기공식도 했다. 하지만 기초단체장이 바뀌자 계획은 취소됐다.

“그럼 나라도 박물관을 지어야겠다고 해서 정한 게 여기(양평)입니다. 2000평(약 6600㎡) 밖에 안 돼서 전시공간이 부족하죠. 전시공간을 키우려면 자본력이 뒷받침 돼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이건희 씨가 ‘내가 돈이 없어서 (유물과 미술품을) 못 사는지 누가 알겠느냐’고 했을 정도니까요.”

고미술품이나 유물은 위작(僞作) 시비가 적지 않다. 돌 같은 경우는 위작이 적다고 한다. 돌을 한번 움직이려면 운반비나 인건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위작 제조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운반비가 물건 값의 30~40%를 차지한다. 상대적으로 석물 값이 다른 것에 비해 쌌다. 이 씨가 돌에 입문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좋은 물건을 싼 값에 살 때의 희열이 상당했고, 이른바 돈 쓰는 재미도 많이 느꼈다는 이 씨도 60을 넘어서부터는 힘에 부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는 열정이 식어버렸는지 좀 지쳤어요. 내가 욕심을 너무 부렸나, 에이 다 없애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해태박물관 건립을 돕고 있는 이 씨의 지인은 “그래도 좋은 돌 있다고 하면 눈을 번쩍 뜬다”라고 했다.

이 씨가 생각하는 해태상은 수호신이다. 정신적으로 나약한 현대인에게 위안이 되고, 그들을 지켜주며 좋은 일이 생기게 해줄 것 같은….

“1000년 된 돌에서 나오는 기(氣)를 받아서 잘 되시라는 겁니다.” 돌과의 연애를 멈추지 못하는 이 씨가 해태 같은 미소를 지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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