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공감 Harmony/이 사람이 사는법]염색 화가 박정우 “염색 기술자요? 청초한 그림 그리는 예술가랍니다!”

동아일보 입력 2013-03-18 03:00수정 2013-03-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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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잘 몰라요” 하던 이들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상
“예술, 절대로 어렵지 않아요”
충북 제천시 청풍면에서 ‘염색 그림’ 갤러리를 운영하는 박정우 작가. 그는 “염색은 기술이 아닌 예술”이라고 말했다. 제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갤러리는 어쩐지 낯설다. 그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천에 자연을 옮겨 놓은 그림이 전시된 갤러리라면, 게다가 어느 고급스러운 카페에 들어온 듯 창밖으론 맑은 호수가 펼쳐진 곳에 있다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가 보고 싶지 않겠는가.

충북 제천시 청풍면 ‘박정우 갤러리’가 딱 그런 갤러리다. 제천의 상징 청풍호반이 내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이 갤러리에는 도화지가 아닌 천에 염색된 그림이 전시돼있는 국내 유일 ‘염색 그림’ 갤러리다. 이곳을 운영하는 박정우 작가(52)는 꽃, 숲 같이 자연에서 소재를 찾았기에 별다른 설명 없이도 쉽게 감상할 수 있다. 청풍호반을 찾았던 관광객들이 설마 하며 왔다가 몇 시간씩 감상하고 돌아가는 곳, 박정우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 봤다. 》

그림은 나의 운명


제천에서 나고 자란 박 씨는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났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학교 미술 공모전에서 6학년 선배들을 제치고 1등을 했다. 박 씨의 재능을 눈여겨본 당시 미술 교사는 방과 후에도 박 씨를 남겨 ‘특별 과외’를 시켰다.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면 자유롭게 집으로 갔지만 박 씨는 늘 홀로 남았다. 그래도 즐겁기만 했다. 크레파스 두세 박스가 한 달을 채 못 갔다. 그림은 박 씨의 전부였다.

“미술을 할 때가 제일 행복했고, 그림이 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술은 배워서 하는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니까요. 선생님을 잘 만난 행운도 있었죠. 이제껏 학원 한 번 안 다녀도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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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쟁이’들은 먹고살 길이 없다며 부모가 자식을 말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박 씨 부모님은 딸의 재능을 환영했다. 그림과 함께한 청소년기를 지나 1979년 박 씨는 강원대 미술교육과에 입학했다. 서울의 유명 사립대를 가고 싶었지만 등록금이 너무 비쌌다. 딸이 국립대 사범대를 나와 미술 교사로 평범히 살길 원하는 부모님의 기대도 한몫했다. 박 씨는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어디든 상관이 없었다.

천에 그림을 그린다


서울로 대학을 가지 않은 건 오히려 행운이었다. 대학에서 다른 운명을 만났기 때문이다. 한 강의실에서 염색 수업을 들었는데 이상하게 끌렸다. 염료가 천에 스며들 때의 소박하고 맑은 느낌이 좋았다. 강의실에서고, 밖에서고 염색 기법을 배우는 데 모든 시간을 쏟았다. 천에 새겨진 그림은 유화나 수채화보다 맑고 청초했다.

“그 전까지 유화나 수채화를 그릴 때 어떤 부족한 느낌이 있었어요. 더 맑은 느낌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도저히 그런 느낌이 안 나더라고요. 하지만 염색은 달랐어요. 물감이 천에 스며들며 생기는 색감은 자연 그대로였거든요.”

염색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도구를 이용해 도장을 찍듯 색을 물들이는 날염, 천을 염료에 담가서 물들이는 침염, 실로 묶은 다음 염료를 묻혀 무늬를 그려내는 홀치기염 등이다. 염색 그림을 그리려면 이런 기법을 총동원해야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하지는 않다. 정밀한 그림을 그리려면 더 섬세한 기법을 연구해야 했다.

박 씨는 끊임없이 연구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개발했다. 그렇게 해서 개발한 기법이 양초의 원료인 파라핀을 이용한 방법이다. 염료를 파라핀에 묻혀 천에 물들이면 크게 번지지 않았다. 꽃, 곤충 등 섬세한 대상을 그릴 때 파라핀을 이용했다.

그림을 다 그린 다음에는 천을 다림질하고, 찜통에 쪄 파라핀을 증발시킨다. 그림의 윤곽에 박음질도 한다. 이렇게 하면 마치 3차원(3D) 그림을 보는 듯 입체감과 질감이 살아나 다른 회화와는 다른 독특한 느낌을 풍길 수 있다.

염색 그림 작업은 여간 고달픈 게 아니다.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함이 필요하다. 일반 회화를 그리는 것보다 3배 이상의 시간이 든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다 실수를 하면 덧칠하거나 수정을 할 수 있지만 염색은 다르다. 붓이 조금만 흔들려도 실패다. 물감이 의도하지 않은 곳에 떨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그리거나 천을 버려야 한다. 게다가 바느질에 열처리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염색 그림만 그리는 화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염색 그림을 그리려면 일단 성실해야 해요. 성격이 급하거나 성실하지 않으면 이 과정을 견뎌낼 수가 없지요. 다행히 저의 가장 큰 무기가 성실성이었거든요.”

염색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

박 씨의 이런 활동은 대학 3학년 때인 1982년 처음 주목받기 시작했다. 강원도 미술대전에 염색 그림을 출품해 은상을 받았던 것. 염색 그림은 출품 분야가 없어 ‘회화’가 아닌 ‘공예’로 응모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원주의 한 중학교에서 미술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틈틈이 염색 그림을 그려 나갔다. 주로 꽃을 그렸다. “꽃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고 아름다움의 원천이잖아요.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꽃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염색 그림을 그린 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그렇다고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염색을 예술로 보는 이가 적었다. 옷이나 천에 물을 들이는 ‘기술’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모전에 나가고 싶어도 염색 그림은 출품 분야가 아예 없었다. 박 씨의 생각은 달랐다. 염색도 충분히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염색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입니다. 저도 기술자가 아닌 예술가죠. 그런데 저를 기술자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속상할 때가 많았어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왔다. 언제부턴가 박 씨의 그림을 알아봐주는 이가 늘었다. 1996년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에도 11차례에 걸쳐 각종 갤러리가 기획한 전시에 초대됐다. 신이 났다. 예술성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다.

2006년 학교를 퇴직하고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고향에 작은 집을 하나 지어 작업실로 삼고 작품 활동에 들어갔다. 알음알음 이름이 알려지자 2010년에는 제천시가 청풍호반에 있던 2층 건물을 박 씨에게 제공했다. 갤러리를 만들어 관광객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꾸며보라는 취지였다. 그는 “상업시설로 쓰면 이익도 많이 날 텐데 굳이 예술 전시공간으로 쓰라고 하니 감사했다”고 말했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


이곳 1층은 동료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 2층은 박 씨의 염색 그림을 전시하는 갤러리다. 넥타이, 옷, 스카프 등 자신의 염색 기술을 활용한 제품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청풍호반을 즐기러 온 관광객들은 낯선 갤러리 앞에서 한 번씩 발걸음을 멈춘다. 처음에는 “저 그림 잘 몰라요”라며 머뭇대던 사람들도 갤러리 안으로 들어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림을 감상한다. 그만큼 쉽고 편안하다. 박 씨는 이곳이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갤러리가 됐으면 한다. 동료 작가들이 전시를 할 때 대관료도 받지 않는다.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저야 교사로서 안정적인 월급을 받았던 덕분에 종종 전시회를 열었지요. 그래서 저는 이곳을 모든 작가와 시민들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주저하지 말고 들어오세요. 예술은 절대로 어렵지 않답니다.”

제천=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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