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적자생존이라는… 통념을 뒤집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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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이너프/다니엘 S. 밀로 지음·이충호 옮김/432쪽·2만2000원·다산사이언스
◇우정의 과학/리디아 덴워스 지음·안기순 옮김/448쪽·2만원·흐름출판

프랑스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 진화관에는 수십 마리의 박제 동물들이 행진하는 것처럼 전시돼 있다. 대부분의 종(種)이 한 마리 또는 두 마리지만 기린은 모두 네 마리다. ‘굿 이너프’의 저자는 “진화관을 만든 사람들은 기린을 진화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봤다”고 설명한다. 다산사이언스 제공
프랑스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 진화관에는 수십 마리의 박제 동물들이 행진하는 것처럼 전시돼 있다. 대부분의 종(種)이 한 마리 또는 두 마리지만 기린은 모두 네 마리다. ‘굿 이너프’의 저자는 “진화관을 만든 사람들은 기린을 진화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봤다”고 설명한다. 다산사이언스 제공

기린의 기다란 목이 적자생존의 결과라는 설명을 익히 들어봤을 것이다. 진화생물학자 찰스 다윈(1809∼1882)은 기린의 긴 목이 높이 달린 잎을 뜯어먹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하며 모든 기린의 목이 길어진 배경에는 경쟁 메커니즘이 있다고 주장했다. 목이 짧은 기린과 긴 기린 사이의 경쟁에서 후자만이 살아남은 결과라는 것이다.

이런 설명이 타당하려면 기린은 나무에 높이 매달린 잎과 열매를 주식으로 하는 동물이어야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한 연구팀이 기린을 관찰한 결과, 기린은 주로 고개를 숙여 덤불이나 어깨 높이보다 낮은 곳에 있는 잎을 즐겨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기린은 뇌까지 피를 순환시키려면 긴 목을 통과해야 하는 탓에 심장이 기형적으로 크고 뇌를 비롯한 다른 주요 기관들이 불균형적으로 작아졌다. 긴 목은 기린을 살리는 게 아니라 위태롭게 하고 있었다.

다윈의 진화생물학,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한 유전자의 이기성(利己性) 등 현대를 지배하고 있는 과학적 통념에 반박하는 책들이 잇따라 나왔다. ‘굿 이너프’의 저자는 적자생존이라는 대원칙에 가려진 수많은 ‘최적화되지 않은 개체들의 세상’을 조명했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인 저자는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진화생물학자다.

저자가 다윈의 진화론을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요한 이유는 이 이론이 현대사회에서 무척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자연의 섭리’라는 인식은 도태된 사람들을 방치하고, 강함과 선함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저자가 수집한 관찰 결과에 따르면 자연에는 최적화되지 않은 종이 대다수를 이룬다. 모든 생물은 최적의 형질이어서 자연에 선택된 것이 아니며, 그저 극심하게 나쁘지는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우정의 과학’의 저자는 생물의 유전자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이기성이라는 통념에 반박한다. 미국 과학 저널리스트인 그는 “오히려 이타성과 공존을 전제로 하는 우정(friendship)이야말로 생물의 유전자에 새겨진 본성”이라고 말한다.

지난 수세기 동안 우정은 인간사회에서만 공유되는 문화적인 산물로 여겨져 왔다. 이런 통념과 달리 문화가 아닌 본성과 습성에 따라 행동하는 수많은 동물군에서 우정이 발견된다고 한다.

개코원숭이들은 가족이 아닌 개체와 서로 털을 골라주고 심지어 서로 새끼들을 돌봐준다. 히말라야원숭이 중 무리와 관계가 원만한, 즉 친구 관계가 좋은 개체들은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경향이 있고 이 성질은 유전된다.

중요한 지점은 개코원숭이와 히말라야원숭이 모두 모계 중심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 저자는 우정의 필수성이 간과돼 왔던 이유가 수컷 위주의 연구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동물 연구자들은 수컷 쥐를 기준으로 연구했고 이 때문에 보살핌이나 어울림보다 투쟁, 도피의 양태가 훨씬 자주 관찰됐다.

기존 연구에 가려져 있던 나머지 반쪽 퍼즐을 맞춘 저자는 “보살피는 본능은 생물의 공격적이고 이기적인 측면만큼이나 끈질기다”고 설명한다. 수컷과 암컷을 모두 아우르고, 모계 중심의 동물들을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세상을 다시 조명하면 인간은 타인을 보살피는 일을 음식이나 잠자리를 찾는 것만큼 자연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경쟁-승리-성장으로 이어지는 성장제일주의 한국사회가 숨 가쁘게 느껴지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적자생존#통념#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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