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조연에서 원톱 주연으로… 조우진 “데뷔 22년만에 기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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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개봉 ‘발신제한’서 첫 주연
두 자녀 차에 태운 등굣길 운전중 “차에서 내리면 폭발” 협박 전화
거액 요구하는 범인과 사투 벌여… 제한된 공간서 실감나는 감정 연기
“50만원 들고 서울 온 날 생각나 이 영화에 혼을 담아 찍었죠”

‘1999년 단돈 50만 원을 들고 상경한 내게 지금부터 펼쳐지는 모든 일은 기적이다.’

영화배우 조우진(42·사진)이 최근 자신의 팬 카페에 올린 글이다. 그는 16일 서울 용산구 CGV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영화 ‘발신제한’ 시사회에서 “영화가 시작하는데 이 글이 떠올랐다. 내게 기적이 일어나고 있구나…”라고 말했다. ‘한국 영화는 조우진이 나오는 영화와 나오지 않는 영화로 나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많은 작품에 출연한 그가 데뷔 22년 만에 처음 주연을 맡았다. 그는 촬영부터 홍보 활동을 진행하는 지금까지 모든 게 기적 같다고 했다.

23일 개봉하는 영화는 등굣길의 두 자녀를 차에 태워 운전 중인 주인공 성규에게 발신제한으로 “차에서 내리면 폭탄이 터진다”는 협박 전화가 걸려오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18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조우진은 “영화에 혼을 담았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신작은 영화 ‘돈’에서 물면 안 놓는 금융감독원 직원 한지철부터 ‘마약왕’의 조폭 우두머리 조성강까지 선악을 오가는 배역을 두루 섭렵한 조우진 연기 경력의 집합체다.

영화에서 은행센터장 성규는 부하 직원에게는 무리한 지시를 내리면서 고객에겐 한없이 고개를 조아리는 직장인인 동시에 주말엔 침대와 한 몸이 되지만 속으로는 자녀를 끔찍이 아끼는 아빠다. 자신이 판매한 금융 상품으로 인해 부도가 난 고객사를 냉정하게 무시하지만 훗날 이를 뼈저리게 후회하는 등 선악의 이분법으로 규정하기 힘든 다층적 캐릭터다.

영화 ‘발신제한’에서 폭탄테러 용의자로 몰린 은행 센터장 성규(조우진)가 경찰에 포위된 장면. 데뷔 22년 만에 처음 주연을 맡은 조우진은 “아침에 눈뜰 때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기적과 같다”고 말했다. CJ ENM 제공
영화 ‘발신제한’에서 폭탄테러 용의자로 몰린 은행 센터장 성규(조우진)가 경찰에 포위된 장면. 데뷔 22년 만에 처음 주연을 맡은 조우진은 “아침에 눈뜰 때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기적과 같다”고 말했다. CJ ENM 제공
그는 영화 내내 차 안에서 연기를 펼친다. 폐쇄 공간에서 딸과 아내, 협박범과 경찰을 마주하며 느끼는 공포와 긴장, 후회와 뉘우침의 감정을 세심히 표현해냈다. 조우진은 “성규가 처한 상황을 실감하는 게 관건이었다”며 “‘내 밑에 폭탄이 있다, 뒤에 아이들이 타고 있다, 난 내릴 수 없다’는 걸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스스로에게 되뇌었다”고 말했다.

협박범에게 40억 원을 전달하지 않으면 자녀를 태운 차가 폭발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기해야 하는 만큼 출연에 대한 고민도 컸다. “영화 ‘서복’ 촬영 중 제작사 대표님이 제안해 주셔서 시나리오를 접했습니다. 처음 읽은 뒤 든 생각은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였어요. 성규라는 인물이 놓인 극한의 상황, 표현해야 하는 텐션은 다른 영화들에서 발견하지 못한 무게였죠. 김창주 감독과 만났는데 ‘어떻게든 이 작품을 만들어내겠다. 그걸 반드시 당신과 함께하겠다’는 엄청난 열정을 봤습니다. 이분이라면 기대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조우진의 연기 인생은 ‘내부자들’(2015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99년 연극 ‘마지막 포옹’으로 데뷔했지만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던 그에게 ‘내부자들’의 조 상무 역은 대중에게 그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발신제한’은 ‘내부자들’에 이어 조우진 연기 인생의 두 번째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영화를 계기로 조우진이 감칠맛을 더하는 명품 조연에서 2시간을 혼자 끌고 나가기에 손색이 없는 주연으로 거듭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쉬지 않고 다작을 해온 꾸준함과 집요함이 빚은 결과다.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쉬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선배님들이 ‘좀 쉬어야 하지 않냐. 건강관리도 해야지’라고 말씀하시는데 현장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는 다른 현장에서 풀려요. 일은 일로 푸는 게 제 스타일인 것 같아요.”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조우진#주연#발신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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