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상업학교 한국인 학생들, 공부 잘해도 좋은 일자리 못 구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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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민족차별…’ 펴낸 정연태 교수
강경상업학교 차별 실태 조사…입학과정-중퇴생 학적부 분석
조선인 피해 객관적으로 증명

일제강점기 상업학교를 졸업한 조선인들은 조선은행, 조선식산은행, 조선저축은행 취업을 꿈꿨다. 그러나 이들이 처한 식민지 현실은 냉혹했다. 조선인 졸업생들은 성적이 우수해도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처우가 떨어지는 금융조합 등에 취업하는 게 보통이었다.

최근 발간된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푸른역사)는 1920, 30년대 중 9개 연도에 걸쳐 충남 논산시 강경상업학교 졸업생 283명(조선인 161명, 일본인 122명)의 학업성적과 취업현황을 전수 분석했다. 이 가운데 조선·식산·저축은행에 취업한 조선인과 일본인은 각각 △졸업성적 상위 10% 이내 3명 △10∼30% 1명이다. 성적 상위 30% 이내 조선인 졸업생 수(59명)가 일본인(19명)보다 3배 이상으로 많은 걸 감안하면 민족차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저자인 정연태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 민족 간 취업경쟁에서 성적 이외 변수가 영향을 끼친 걸로 봤다. 당시는 취업에서 학교장 추천이나 면접이 중요했다. 추천서에는 학적부에 적힌 학업성적, 담임교사가 작성한 행실 및 근태 평가, 학사징계 여부가 포함됐다. 행실 평가와 징계는 학교 당국의 주관적 판단에 달린 만큼 민족차별이 이뤄지기 쉬운 구조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광복 이전까지 총 25년 동안 강경상업학교 졸업생 977명과 중퇴생 512명의 학적부도 조사했다. 연구대상으로 이 학교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정 교수는 “강경상업학교는 당시 재학생의 한일 학생 비율이 엇비슷해 같은 조건 아래 민족차별이 얼마나 심했는지 파악하기가 적합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중퇴생 학적부와 취업현황이 담긴 동창회 회원명부를 분석해 입학부터 취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과정에서 조선인이 차별받은 실태를 객관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실제로 이 학교가 3년제에서 5년제로 승격된 1925년 일본인은 40여 명이 지원해 29명이 합격했지만 조선인은 120여 명의 지원자 중 21명만 합격했다.

학교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졸업생 1인당 평균 징계건수는 조선인이 0.25건이었지만 일본인은 0.13건이었다. 재학생들의 퇴학에도 민족차별 흐름이 엿보인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1942년까지 조선인 학생은 3100명 중 약 8%(240명)가 중퇴해 일본 학생들의 중퇴 비중(12%)과 비슷하다. 하지만 ‘비행’을 이유로 퇴학당한 조선인(14명)은 일본인(3명)의 4배가 넘었다.

더 눈여겨볼 점은 중퇴 사유다. 양측 모두 경제사정이나 사망으로 중퇴한 비중은 각각 24.3%, 26%로 비슷했지만 나머지에선 차이가 컸다. 조선인 학생은 결석(12.3%) 사상·운동(9.9%) 비중이 높은 반면에 일본 학생은 성적(23.1%) 질병(16%) 전학(13%)의 비중이 높았다. 1923∼1945년 1∼5학년에서 조선인 평균 성적이 일본인에 뒤진 경우가 단 2건에 그친 걸 감안하면 중퇴 사유에도 민족차별의 요소가 반영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정연태#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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