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콘텐츠 시대… 영화도 ‘가로형 화면’ 고정관념 깼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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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업계 ‘세로형 작품’ 제작 봇물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아이폰11 프로로 촬영한 영화 ‘스턴트 더블’에서 주인공인 스턴트맨이 건물에서 낙하하는 장면(오른쪽). 셔젤
 감독은 “세로로 영화를 촬영하는 것의 즐거운 점은 왼쪽과 오른쪽이 아닌 위와 아래의 앵글로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왼쪽 사진은 충무로 영화제 개막작 ‘The CMR’ 중 이옥섭 감독이 연출한 ‘펫숍 브이로그’. 유튜브·틱톡 캡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아이폰11 프로로 촬영한 영화 ‘스턴트 더블’에서 주인공인 스턴트맨이 건물에서 낙하하는 장면(오른쪽). 셔젤 감독은 “세로로 영화를 촬영하는 것의 즐거운 점은 왼쪽과 오른쪽이 아닌 위와 아래의 앵글로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왼쪽 사진은 충무로 영화제 개막작 ‘The CMR’ 중 이옥섭 감독이 연출한 ‘펫숍 브이로그’. 유튜브·틱톡 캡처
고층 건물에서 떨어지는 스턴트맨,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는 스마트폰 화면….

이런 장면을 담기에 가장 좋은 화면 포맷은 ‘세로’다. 높게 뻗은 건물들 사이로 수직 낙하하는 남성의 모습을 담은 세로형 영화 ‘스턴트 더블’을 스마트폰 세로 화면에 꽉 채워 감상하고 있으면 마치 자신이 건물에서 떨어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거나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는 스마트폰 화면 역시 가로보다 세로로 화면에 담겼을 때 더 진짜 같다.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는 ‘스크린라이프’ 기법을 활용해 ‘세로형 예능’의 포문을 연 카카오M의 ‘페이스아이디’가 대표적이다.

세로형 콘텐츠가 새로운 제작 문법이 되고 있다. 스마트폰이 주된 동영상 소비 플랫폼이 된 데다, 스마트폰을 세로로 손에 쥐고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기에 콘텐츠 업계가 세로형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기존에는 틱톡, 스냅챗 같은 플랫폼을 활용한 간단한 영상이 주를 이뤘지만 점차 예능, 영화 등 서사와 완성도를 갖춘 세로형 콘텐츠가 나오고 있다.

세로형 콘텐츠의 등장이 가장 놀라운 곳은 영화 업계다. 가로세로 화면비 1.33 대 1에서 출발한 극장 스크린은 광활한 장면을 담을 수 있도록 가로로 길게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대표적인 화면비는 2.35 대 1이다. 그런데 이달 열린 ‘충무로 영화제’는 ‘충무로, 새(세)로 보다’라는 슬로건 아래 이를 뒤집었다. 개막작으로 세로 영화 ‘The CMR’를 네이버TV와 틱톡에서 선보였다. ‘메기’의 이옥섭 감독, ‘69세’의 임선애 감독 등 15명의 감독이 서울 중구 15개 행정동 거리를 세로로 담은 1시간 분량의 옴니버스 영화다.

충무로영화제를 주최한 한국영화감독조합 공동대표 민규동 감독은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서사가 없는 세로 동영상은 각자의 휴대전화에 이미 넘치도록 있었기에 내러티브를 갖춘 세로형 영화를 만드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세로에 최적화된 연출을 보여준 영화는 ‘라라랜드’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아이폰11 프로로 촬영한 9분짜리 영화 스턴트 더블이다. 아이폰11 프로 홍보차 만들어진 영화로 8월 공개됐다. 주인공인 스턴트맨이 고층 건물에서 낙하하는 장면, 곡예를 선보이며 높은 계단에서 내려오는 장면 등 수직 구조를 활용해 세로 화면의 강점을 극대화했다. 민 감독은 “세로 프레임을 쓸 경우 풀샷, 대화 화면 등에서 기존의 가로와는 완전히 다른 문법을 취해야 하기에 새로운 프레임에 맞는 고유한 이미지를 고민해야 한다. 스턴트 더블이 세로에 최적화된 영화 제작 사례”라고 했다.

최초의 세로 블록버스터 영화도 나온다. ‘서칭’을 만든 러시아 감독 티무르 베크맘베토프는 내년 초 1000만 달러가 들어간 영화 ‘V2. Escape form Hell’을 세로로 선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소련 파일럿이 비행기를 공중 납치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일찍이 시청 플랫폼이 TV에서 모바일로 옮겨 온 예능에서도 세로 콘텐츠가 강세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카카오M이다. 가수 이효리의 일상을 세로 화면에 담은 페이스아이디는 이효리의 스마트폰 화면을 그대로 편집해 리얼리티를 살렸다.

9월 공개된 2화의 조회수는 528만 회에 달한다. 작사가 김이나가 게스트와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톡이나 할까’도 카카오톡 대화창을 보여주는 세로 예능이다. 카카오M 관계자는 “모바일로 동영상을 소비하는 시대가 된 만큼 세로뿐만 아니라 일대일 등 스마트폰에 적합한 화면비를 찾고 있다. 향후 세로 드라마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세로형 작품#모바일 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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