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삶은 지루해… 아들 살리려 극한 치닫는 父情에 끌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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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 오너’로 복귀한 브라이언 크랜스턴

드라마 ‘유어 오너’에서 아들의 뺑소니 범죄를 숨기기 위해 고뇌하는 브라이언 크랜스턴. 그는 “촬영 중 달리기 장면이 있다는 걸 
듣고 마라톤 팬으로서 정말 설렜다. 그런데 내가 60대 중반인 걸 잊은 탓인지 뛰는 장면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밝혔다. 
쿠팡플레이·Showtime 제공
드라마 ‘유어 오너’에서 아들의 뺑소니 범죄를 숨기기 위해 고뇌하는 브라이언 크랜스턴. 그는 “촬영 중 달리기 장면이 있다는 걸 듣고 마라톤 팬으로서 정말 설렜다. 그런데 내가 60대 중반인 걸 잊은 탓인지 뛰는 장면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밝혔다. 쿠팡플레이·Showtime 제공
“매순간 올바른 결정만 내리는 완벽한 삶, 너무 지루하지 않나요?”

평범한 고교 화학교사가 마약을 만들며 ‘막 나가기’ 시작하더니 이번엔 뺑소니 사망사고를 낸 아들을 빼내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며 ‘더 막 나가는’ 판사가 되어 돌아왔다.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막 나가기)’ 주인공으로 세계적 스타덤에 오른 미국 유명 배우 브라이언 크랜스턴(64)이 신작 시리즈 ‘유어 오너(Your Honor·존경하는 재판장님)’로 팬들과 만난다.

신작 공개를 앞두고 최근 각국 언론과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그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인생 모든 문제의 해답을 알고 있는 완전무결함은 지루하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고 약한 존재”라고 답했다. 이어 “배우에게도 극한으로 치닫는 배역이 매력적이고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며 “요즘 시청자들도 막가는 캐릭터를 보고 싶어 돈과 에너지를 더 투자하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1980년부터 배우, 성우, 극작가, 연출가로 활동해온 그는 현재 미국에서 손꼽히는 배우다. 브레이킹 배드와 함께 영화 ‘트럼보’ ‘업사이드’ ‘인필트레이터’ 등으로 국내에도 얼굴을 알렸다. 저음으로 깊게 깔리는 ‘동굴 목소리’에 복잡다단한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력이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옴짝달싹할 수 없는 극한 상황으로 내몰렸을 때 뿜어내는 광적인 연기가 그의 트레이드마크.

폐암 말기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화학교사 ‘월터 화이트’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마약을 제조하는 과정을 그린 ‘브레이킹 배드’로 그는 미국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네 차례나 거머쥐었다. 이 작품은 유명 리뷰 사이트에서 99점이라는 역대 최고점을 받아 2014년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2018년엔 영국 공연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올리비에 어워즈’의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전작 영화 ‘트럼보’(위 사진)에서 천재 시나리오 작가로 열연한 브라이언 크랜스턴이 냉혹한 판사 역할로 변신했다. 프레인글로벌·쿠팡플레이·Showtime 제공
전작 영화 ‘트럼보’(위 사진)에서 천재 시나리오 작가로 열연한 브라이언 크랜스턴이 냉혹한 판사 역할로 변신했다. 프레인글로벌·쿠팡플레이·Showtime 제공
이스라엘 원작 드라마 ‘Kvodo’를 각색한 신작 ‘유어 오너’에서 그는 법을 수호하는 강직한 판사이자 아들의 뺑소니 범죄를 은폐하는 아버지 ‘마이클 데지아토’ 역할을 맡았다. 크랜스턴은 매순간 악마의 장단에 춤을 추듯 끊임없이 흔들리고 동요한다. 그는 “오랜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건 이 모순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줄거리 때문”이라며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뭐든 하려는 부모 마음은 전 세계 누구나 똑같을 것”이라고 했다.

급박한 위기에 연속적으로 맞닥뜨리는 배역을 그는 “충동적” “즉각적”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모든 범죄를 치밀하게 계획하는 (브레이킹 배드의) ‘빌런(악역)’과는 정반대”라고 했다. 극 중 그의 아들이 저지른 사고의 사망자는 공교롭게도 지역 조직폭력배 보스의 아들.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 아들에 대한 보복 살인이 불 보듯 뻔해 모든 걸 내려놓고 경찰에 자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아들이 사망 사고를 냈다고 고백한 뒤 경찰 포위망이 좁혀오고, 다른 누군가는 눈에 불을 켜고 범인을 찾고 있어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오로지 내 자식을 지키겠다는 생각 하나뿐, 모든 건 충동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겠죠.”

결국 극 중 그는 한 흑인 청년이 범죄 누명을 쓰고 체포된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다. 괴로워하는 아들에게 철저히 입단속을 시키며 교묘히 법리를 이용한다. 경찰은 진상 조사보다는 무고한 희생양에게 억지 자백을 강요할 뿐이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미국 사회의 사법 정의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그는 작품 돌입 전 철저히 캐릭터를 연구하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판사 배역을 위해 몇 주 동안 극의 배경인 미국 뉴올리언스 일대 법원을 들락거리며 재판을 지켜봤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까 봐 우려도 했었지만 모두 엄숙하게 재판을 지켜보고 있어서 마음 편히 캐릭터 분석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어떤 판사는 우주의 지배자 같았고, 누군가는 무대에 선 배우 같았다”면서 “부자에게 호의적이고 빈자에게 가혹한 법정 내 불평등은 세계 어디에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올해 7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그는 혈장을 기증하고 현장에 복귀해 촬영을 마쳤다. 그는 “마스크를 쓰고 연습하느라 상대역 대사가 들리지 않아 ‘방금 뭐라고?’를 수십 번씩 반복해야 했다”며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전 지구적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이런 때일수록 ‘유어 오너’ 같은 순수한 오락물은 더 짜릿할 겁니다!”.

이 시리즈는 쿠팡의 OTT 서비스 ‘쿠팡플레이’를 통해 내년 1월 말 국내 단독 공개된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유어 오너#트럼보#브라이언 크랜스턴#화상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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