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이언 보스트리지 지음·장호연 옮김/520쪽·2만5000원·바다출판사
“환호라. 무엇에 대한 환호일까? 작곡가? 음악? 아니면 공연? 박수가 쏟아지고 연주자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무례한 일이 아닐까? 종종, 솔직히 말하면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맺음말의 이 문장을 만나고 나서 적잖이 위로를 받았다. 클래식 음악 공연장을 언젠가부터 찾지 않는다. 객석이 지나치게 밝고 요란하고 기계적이라 여겨져서다. 그 이질감이 허튼 착각만은 아니라고 다독여주는 듯했다.
‘겨울 나그네’ 스물네 곡의 무대에서 마지막 건반의 짤막한 여음이 사라졌을 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저자는 “가수와 함께 70분 넘게 어려운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조명 속에서 서로를 대면하고 각자의 취약함을 드러냈으니,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만만치 않게 여겨질 수 있다”고 썼다.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책을 쓴 영국 성악가 이언 보스트리지(56)는 26세 때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고 강단에 섰다가 29세 때 성악가로 늦깎이 데뷔한 인물이다. 사춘기 때 자신의 짝사랑을 거절한 앞집 소녀를 원망하며 런던 거리를 정처 없이 헤매면서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흥얼거렸다는 그는 2015년 펴낸 이 책에 ‘강박에 대한 해부’라는 부제를 붙였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나에게는 전통적인 방식의 음악학 분석을 할 능력이 없다”고 겸허하게 고백한 보스트리지는 “집처럼 아늑한 동시에 몹시 신비로운 이 연가곡에 다가가는 문턱을 낮추기 위해 이 작품에 대한 책을 보태게 됐다”고 밝혔다.
“체계적으로 파고들어 분석하는 가이드북이 결코 아니다. 공연 리허설을 하면서 새삼 느끼는 바이지만, 이 변화무쌍한 음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잘해도 한시적인 것이고, 최악의 경우 헛소리가 된다. 이 책은 복잡하고 아름다운 의미의 망을 살펴보는 탐구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죽음을 한 해 앞둔 서른 살 때 이 곡을 완성하고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악보 수정에 매달린 슈베르트는 “다른 어떤 노래보다 정성을 많이 쏟은 무시무시한 노래를 불러주겠다”며 벗들을 불러 모았다. 그가 직접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마친 뒤 연주 장소를 제공한 친구는 “‘보리수’ 한 곡만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현실이 일목요연하지 않기에 객석의 사람들은 마주한 무대가 일목요연하길 고대한다. 하지만 저자가 밝혔듯 ‘겨울 나그네’는 현실이 늘 파편으로 존재함을 알려주는 음악이다. 그렇기에 몇 번을 들어도 다르게 들린다.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연주하네. 얼음 위에 맨발로 서서 몸을 앞뒤로 흔드네.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네. 주위에서 개들이 짖네. 그저 내버려두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24곡 ‘거리의 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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