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읽는 법]다독이는 파편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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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이언 보스트리지 지음·장호연 옮김/520쪽·2만5000원·바다출판사

“환호라. 무엇에 대한 환호일까? 작곡가? 음악? 아니면 공연? 박수가 쏟아지고 연주자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무례한 일이 아닐까? 종종, 솔직히 말하면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맺음말의 이 문장을 만나고 나서 적잖이 위로를 받았다. 클래식 음악 공연장을 언젠가부터 찾지 않는다. 객석이 지나치게 밝고 요란하고 기계적이라 여겨져서다. 그 이질감이 허튼 착각만은 아니라고 다독여주는 듯했다.

‘겨울 나그네’ 스물네 곡의 무대에서 마지막 건반의 짤막한 여음이 사라졌을 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저자는 “가수와 함께 70분 넘게 어려운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조명 속에서 서로를 대면하고 각자의 취약함을 드러냈으니,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만만치 않게 여겨질 수 있다”고 썼다.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책을 쓴 영국 성악가 이언 보스트리지(56)는 26세 때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고 강단에 섰다가 29세 때 성악가로 늦깎이 데뷔한 인물이다. 사춘기 때 자신의 짝사랑을 거절한 앞집 소녀를 원망하며 런던 거리를 정처 없이 헤매면서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흥얼거렸다는 그는 2015년 펴낸 이 책에 ‘강박에 대한 해부’라는 부제를 붙였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나에게는 전통적인 방식의 음악학 분석을 할 능력이 없다”고 겸허하게 고백한 보스트리지는 “집처럼 아늑한 동시에 몹시 신비로운 이 연가곡에 다가가는 문턱을 낮추기 위해 이 작품에 대한 책을 보태게 됐다”고 밝혔다.

“체계적으로 파고들어 분석하는 가이드북이 결코 아니다. 공연 리허설을 하면서 새삼 느끼는 바이지만, 이 변화무쌍한 음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잘해도 한시적인 것이고, 최악의 경우 헛소리가 된다. 이 책은 복잡하고 아름다운 의미의 망을 살펴보는 탐구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죽음을 한 해 앞둔 서른 살 때 이 곡을 완성하고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악보 수정에 매달린 슈베르트는 “다른 어떤 노래보다 정성을 많이 쏟은 무시무시한 노래를 불러주겠다”며 벗들을 불러 모았다. 그가 직접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마친 뒤 연주 장소를 제공한 친구는 “‘보리수’ 한 곡만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현실이 일목요연하지 않기에 객석의 사람들은 마주한 무대가 일목요연하길 고대한다. 하지만 저자가 밝혔듯 ‘겨울 나그네’는 현실이 늘 파편으로 존재함을 알려주는 음악이다. 그렇기에 몇 번을 들어도 다르게 들린다.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연주하네. 얼음 위에 맨발로 서서 몸을 앞뒤로 흔드네.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네. 주위에서 개들이 짖네. 그저 내버려두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24곡 ‘거리의 악사’)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이언 보스트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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