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현대판 택배기사’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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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에도 배달하는 ‘보장사’… 화장품 판매상 ‘매분구’…
한국학중앙硏 출신 연구자 4인, 직업 세계 담은 ‘조선잡사’ 펴내
‘보장사’는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
‘대립군’은 병역기피 현상 떠올라

조선시대에는 여성들에게 화장품을 판매하는 방문판매원인 ‘매분구’가 있었다(왼쪽 사진). 재료비가 저렴한 짚신은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창업하기 가장 쉬운 분야였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조선시대에는 여성들에게 화장품을 판매하는 방문판매원인 ‘매분구’가 있었다(왼쪽 사진). 재료비가 저렴한 짚신은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창업하기 가장 쉬운 분야였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태상(太上) 4년 고구려가 다시 사신을 보내 천리인 열 명과 천리마 한 필을 바쳤다.’(‘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5호 16국 시대 중국 남연(南燕)의 왕인 모용초(慕容超)에게 ‘천리인’과 천리마를 선물로 보냈다. 천리인은 먼 길을 빠르게, 잘 뛰는 사람이다. 말은 당연히 사람보다 빠르지만 유지비가 비싼 게 문제였다. 말을 대신해 달리는 직업이 생겨났고, 조선시대에는 이들을 보장사(報狀使)라고 불렀다. 폭설이 오거나 밥을 굶어 제대로 달리지 못해 하루라도 늦으면 벌금을 물었다. 최근 택배 종사자의 과로사로 문제가 되는 상황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업(業)의 고단함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신 연구자 4명이 현재와 다른 듯 같은 조선시대의 ‘잡(job·일)’에 집중한 ‘조선잡사(朝鮮雜史)’(민음사)를 펴냈다. 동아일보에 2017년부터 1년 3개월 동안 기고한 칼럼에 살을 붙였다.

연고 없는 시신을 처리하는 매골승(埋骨僧)은 고독사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1614년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굶주린 백성이 대낮에 서로 잡아먹고 역병까지 겹쳐 죽은 자가 이어졌다. … 승려들을 모집하여 그들을 매장하니 이듬해에 끝났다”는 기록이 있다. 매골승은 가족 없는 시신을 찾아 불교식 장례를 지내주고 묏자리를 봐줬다. 나라에서 주는 곡식을 받아 생계를 꾸린 매골승은 준공무원 신분이었다.

군 면제를 받으려고 멀쩡한 치아를 뽑거나, 의료 기록을 조작하는 등 편법이 난무하는 요즘과 같이 조선시대에도 병역 기피 현상이 있었다. 다만 당시에는 가난한 백성이 생계를 이유로 군대를 못 가는 이유가 컸다. 군역(軍役)을 대신 해주는 품팔이들을 대립군(代立軍)이라 불렀다. 양반은 대립군을 불법 행위에 악용하기도 했다. 1700년 이세종은 과거시험장을 지키는 군졸을 매수한 뒤 자신의 종을 대립군으로 대신 들여보내 그 틈에 부정 행위를 해서 급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관직에 오른 뒤 이 사실이 탄로나 지방으로 쫓겨났다.

해외에서 인기인 K뷰티의 DNA를 짐작해볼 수 있는 직업도 있다. 조선시대 왕실과 사대부 여성들은 화장에 관심이 많았다. 유일한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憑虛閣李氏)는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 얼굴 화장과 머리 모양의 실상을 상세히 서술했다. 이때 활동한 이들이 화장품 판매상 매분구(賣粉嫗)다. 이들은 도매와 방문판매를 도맡았고 19세기에는 약방 형태의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기도 했다.

자영업 창업이 치킨집에 쏠리는 것처럼 과거엔 만만한 게 짚신, 돗자리 장사였다. 재료비가 저렴한 짚신은 ‘끝없이’ 소비되는 소비재였고, 돗자리 역시 별 기술 없이도 쉽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필진인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교수는 “기술이 발전해도 먹고사는 문제는 형태만 달라질 뿐 근본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다”며 “어느 직업이든 각 분야 1등은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지금과 유사하다”고 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조선잡사#보장사#대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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