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30분 만에 결정된 ‘한반도의 미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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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타: 8일간의 외교전쟁/세르히 플로히 지음·허승철 옮김/756쪽·4만5000원·역사비평사

흔히 실패한 유화정책, 비굴과 배신 외교의 상징으로 통하는 뮌헨회담 못지않게 숱한 논란을 낳은 정상회담이 1945년 2월 크림반도에서 열린 얄타회담이다. 미국과 영국이 동유럽을 소련에 팔아먹고 극동의 운명마저 소련 손아귀에 던져줬으며, 결국 냉전 시기 많은 문제의 기원이 된 실패한 회담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얄타에서 이미 한반도 분할이 결정됐고 38선이란 분단선까지 그어졌다는 주장도 나왔다.

저자는 말 많고 탈 많은 얄타회담을 각종 공식, 비공식 자료와 기밀문서, 참석자들의 일기, 회고록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복원했다. 옛 소련에서 나고 자라 캐나다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로 있는 그야말로 적임자일 것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윈스턴 처칠, 이오시프 스탈린 등 ‘3거두’의 밀고 당기는 대화를 녹취라도 풀어내듯 긴장감 있게 재구성했다.

학자로서 냉정한 역사적 평가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얄타회담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은 냉전시대의 ‘신화’에서 얻은 부정확한 정보 탓이었다고 지적한다. 얄타회담은 실패한 정치적 거래가 아니었으며 당시로선 불가피한 선택과 결정이었다는 것. 스탈린은 세 정상 가운데 가장 유리한 입장에 있었지만 상대를 잘못 판단하고 착오를 저질렀으며, 루스벨트와 처칠의 선택도 그것을 대체할 만한 실제적인 대안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약소국은 강대국 간 거래로 하루아침에 운명이 바뀌는 신세일 수밖에 없다. 한국 얘기는 루스벨트와 스탈린 둘만의 30분 회동에서 잠깐 거론됐는데 다음이 전부였다.

1943년 11월 테헤란회담에서 한국에 대해 40년 신탁통치를 제안했던 루스벨트는 이번엔 20∼30년을 얘기했다. “기간은 짧을수록 더 좋겠죠”라고 말한 스탈린은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킬 필요가 있는지 물었다. 루스벨트는 그럴 필요 없다고 답했다. 그는 신탁통치 관리국가로 미국 소련 중국을 제안하며 “영국을 포함시킬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영국은 반발할 겁니다”라고 했다. 스탈린은 “영국은 모욕감을 느끼겠죠. 아마도 처칠 총리는 우리를 죽이려 할 거요”라고 농담했다. 루스벨트는 타협안으로 처음엔 세 국가가 맡되 영국이 반발하면 포함시켜 주자고 했다. 스탈린도 동의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얄타: 8일간의 외교전쟁#세르히 플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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