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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식민지의 고통 극복”… 불굴의 민족 영웅을 불러내다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겸임교수
입력 2020-04-09 03:00업데이트 2020-04-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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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0주년 기획/동아일보 100년 문화주의 100년]
<3> 역사소설의 시대를 열다
동아일보는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역사소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장이 됐다. 사진은 춘원 이광수(왼쪽 위)와 그가 쓴 장편 역사소설 ‘마의태자’ 첫 회가 실린 동아일보 1926년 5월 10일 지면(오른쪽 위), 본보 사회부장으로 일했던 빙허 현진건(오른쪽 아래)과 그가 집필한 역사소설 ‘무영탑’이 실린 1938년 7월 25일 지면. 동아일보DB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겸임교수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역사소설의 본격적 등장은 동아일보를 통해 이뤄졌다. 역사소설은 시간적으로 과거에 해당하는 역사적 무대를 서사적 기반으로 한다. 현재의 고단한 삶으로부터 벗어나 역사적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작가의식을 일정 부분 반영한다. 식민지 상황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과거에서 새로운 돌파구의 가능성을 찾고 있다는 뜻이다. 민족의식의 구현과 역사 인식의 중요성을 일깨운 역사소설은 동아일보의 지면을 창작 무대로 삼았다.

동아일보의 역사소설은 이광수(1892∼1950)에 의해 새로운 장이 열렸다. 이광수는 일본 와세다대 유학 시절에 쓴 장편소설 ‘무정’(1917년)을 통해 독자의 열광적 지지를 얻었으며, 1919년 2·8독립선언 직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독립신문을 만들었다. 1921년 귀국했지만 초창기의 문단에 그가 설 만한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창조’ ‘폐허’ ‘백조’ 같은 소그룹 동인지의 일원이 되기에는 그의 몸집이 너무 컸고 문학적 자부심도 높았다. 더구나 ‘창조’를 주도했던 김동인(1900∼1951)은 예술의 자율성을 내세우면서 이광수가 지향하던 계몽주의를 배척했고, ‘백조’의 동인들은 이광수의 보수적 사상을 거론하면서 그를 몰아세웠다.

이때 그를 받아들인 것이 동아일보였다. 이광수는 1923년 기자로 입사했고, 동아일보를 기반으로 역사소설 시대를 열었다. 계급문학 운동의 정치성에 반대하고 민족의식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역사소설이라는 양식을 활용했다. 그가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역사소설 ‘마의태자’(1926년), ‘단종애사’(1928년), ‘이순신’(1931년)은 역사 속 민족적 영웅의 삶을 중심으로 불굴의 민족정신을 그려내고 있다.

‘마의태자’는 근대문학사에 등장하는 본격적인 의미의 장편 역사소설이었다. ‘마의태자’ 이전에도 이광수는 ‘가실’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한 바 있지만 작품의 규모와 성격상 본격적인 역사소설이라 하기는 힘들다. ‘마의태자’는 후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격변의 역사적 정황 자체에 흥미의 초점을 두고 있다. 신라의 왕자로 태어났으나 궁중의 음모로 인해 버려진 궁예는 고난 속에서 성장해 왕국을 이루는 영웅적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소설에서 궁예를 배반하고 왕권을 찬탈한 왕건은 부정적으로 그려졌다. ‘단종애사’는 역사소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폭발적 인기로 입증했던 작품이다. 그것은 단종의 비극적 삶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사실은 단종의 죽음을 보는 한국인의 심성과 결을 이광수가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아일보가 1931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유적 보존 운동을 벌이자 이광수는 소설 ‘이순신’을 통해 이순신의 숭고한 정신을 추적한다. 철갑선의 발명자로서 이순신이 보여준 임진왜란의 전승을 숭앙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의 불타는 충의의 정신을 붓대로 그린 것이다. 이 작품에서 이순신은 군소배들의 거듭된 모함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지켜 내는 모습이 강조된다.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나라를 걱정했던 위대한 희생정신이 영웅적 생애 속에서 빛을 발한다.

김동인도 자신의 첫 번째 역사소설인 ‘젊은 그들’(1930년)을 동아일보에 연재했다. 그는 이 작품을 역사소설이 아니라 ‘통속소설’이라고 규정했지만, 격동의 조선 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민씨(閔氏) 일파에 의해 숙청된 대원군파 후예들의 이야기를 줄거리에 연결함으로써 역사소설로서의 흥미를 창조하고 있다.

소설가 현진건(1900∼1943)도 동아일보 역사소설의 창작 대열에 합류했다. 현진건은 1927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해 10년간을 몸담았던 문사 기자였다.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활동하면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하는 일을 맞이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손 선수의 가슴에 붙어 있는 일장기를 지워버린 채로 사진을 실었다. 이 유명한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동자 가운데 하나로 일본 경찰은 현진건을 체포했다. 그는 수감생활을 견뎌야 했고, 동아일보는 무기정간을 당했다. 현진건은 일제의 강압으로 언론계에서 활동할 수 없던 차에 1938년 7월 동아일보에 소설 연재의 기회를 얻었다. 그때 집필한 작품이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역사소설 ‘무영탑’이다.

신라 경덕왕 때 서라벌이 배경인 이 소설은 당나라의 문화를 존숭하는 사대주의적 집권층과 화랑정신을 바탕으로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려는 민족주의적 세력이 갈등하는 상황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백제 부여의 석수장이 아사달이 높은 예술정신으로 아름다운 탑을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권력에 접근해 행세를 하던 세속화된 승려들과 오직 탑의 완성만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고독한 장인 아사달의 갈등이 깊이 있게 묘사돼 있다. 또 신라 귀족의 딸과 부여에 두고 온 아사녀와의 사이에서 번민하는 아사달의 인간적 고뇌가 잘 드러나 있다. 이 소설은 아사달과 아사녀의 사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한국 민족의 예술적 감각과 미의식을 신라의 탑을 통해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현진건은 ‘흑치상지(黑齒常之)’라는 역사소설을 1939년 10월부터 동아일보에 연재했다. 백제의 장군 흑치상지가 백제 멸망 후 의병을 일으켜 나당(羅唐) 연합군에 반격을 가하면서 빼앗긴 백제의 영토를 되찾는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일본 경찰의 강압 때문에 52회로 연재가 중단됐다. 그 뒤 현진건은 병마와 싸우다가 세상을 떠났다. ‘흑치상지’도 결국 미완성의 유고(遺稿)가 되고 말았다.

동아일보는 광복 뒤에도 역사소설을 지면에 다시 올리기 시작했다. 전통의 무대에 다시 오른 이는 소설가 박종화(1901∼1981)였다. 박종화는 이미 ‘금삼(錦衫)의 피’ ‘다정불심’ 같은 역사소설로 상당한 독자층을 얻었는데, 광복 후 첫 역사소설인 ‘홍경래’를 동아일보 지면에 올린다.

홍경래는 조선 말기 평안도 태생으로 관서지방 출신을 배척하던 지역차별 정책에 저항하면서 외척들의 득세로 어지러운 국정의 부패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박종화는 대한민국의 출발을 지켜보면서 역사소설 ‘홍경래’를 통해 부패 권력의 악폐와 실정을 혁파하기 위해 봉기했던 홍경래의 삶과 투쟁의지를 사실적으로 복원해 냈다. 이 소설은 홍경래가 지니고 있었던 평등사회를 향한 열정과 이상을 낭만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새로운 민중적 영웅상의 창조라는 소설적 성과를 거뒀다.

동아일보 역사소설의 전통은 소설가 김성한(1919∼2010)으로 이어졌다.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던 그는 1968년 ‘요하(遼河)’를 연재했고, ‘왕건’ ‘임진왜란’을 잇달아 동아일보에 발표했다. ‘요하’는 고구려가 중국 수나라 대군을 살수(薩水)에서 격퇴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작가는 6세기 말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뒤 새롭게 형성된 동아시아 지역의 정치적 긴장과 세력 재편 과정을 흥미롭게 복원하고 있다. 그리고 명장 을지문덕을 중심으로 단합했던 고구려인들의 생존을 위한 투지와 항전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동아일보를 무대로 발전해온 역사소설은 역사적 소재를 허구적 서사로 폭넓게 확대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여기서 역사적 상상력의 의미는 간단하게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 문제를 현실 속에서 새롭게 조망할 수 있도록 역사적 사실과 상상적 허구를 서로 결합시켜 놓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 이야기가 가지는 서사적 미학의 가능성까지도 열려 있다.

동아일보의 역사소설은 민족사의 변혁기를 살았던 영웅적 인물의 삶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 많다.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의미는 대부분 영웅적 인물의 삶을 통해 총체적으로 구현된다. 역사를 통해서 현실 문제를 꿰뚫어 보고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과거의 역사적 상황을 새롭게 돌아보기도 한다. 역사소설의 흥미가 바로 여기서 살아난다.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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