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지적이고 날카로운 음악 비평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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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음악/에드워드 사이드 지음·이석호 옮김/584쪽·3만2000원·봄날의책

제목은 ‘경계의 음악’이지만 저자에게 비판의 대상은 경계가 없다. 유명 지휘자는 ‘갈피를 못 잡을 정도로 들쭉날쭉하고 앞뒤 조리가 닿지 않는’ 연주를 들려준다며, 저자가 호의를 가졌던 피아니스트도 ‘훌륭한 작품을 무자비하게 꼬챙이에 꿰어 두들겨 패고 짓밟는다’며 회초리를 맞는다. ‘음알못’들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고명한 이름들이다. 이들을 꼽아 보며 때로 공감하고 때로 부르르 떠는 것도 음악 팬인 독자가 가질 수 있는 재미다.

저자의 동료라 할 음악이론가들도 창날을 피할 수 없다. ‘베토벤은 4온스만큼, 바그너는 2온스만큼 고귀하다는 식이라니, 음주운전자 혈중 알코올 수치라도 된다는 말인가.’ 악성(樂聖)들의 신전 위칸에 모셔진 작곡가들조차 호된 소리를 듣는다.

문학평론가이자 문명비평가였던 저자는 1986년 이후 ‘더 네이션’지의 음악평론가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이 책은 특정한 주제 없이 그가 접한 콘서트에, 음악축제에, 신작에 대해 날카로운 펜을 든 평론들의 모음이다. 거의 매번 가차 없는 독설을 퍼부으면서 평론가로서의 평판을 유지했다는 것은 그의 음악적 지식도 문학과 문명에 대한 것 못지않게 해박했으며 관점이 냉철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독설이 그의 목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높게 평가하는, 그를 움직이는 음악적 체험은 무엇이었을까. “음악에 대한 경험을 ‘우리가 자양분을 취하는 외부의 경험과 연결시켜’ 음악 그 자체로부터 이격(離隔·띄워놓기)시킴으로써 우리의 지성을 자극”하는 체험을 저자는 높이 평가한다.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가 대표적으로 그렇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시각은 로고스(logos·논리) 우위적이며 친(親)모더니즘적이고, 묘한 방식으로 계몽적인 미학자 아도르노의 지점에 가깝다. 다만 모든 음악 팬이 이러한 관점에 설득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텍스트에 거리를 두며 읽은 독자를 이 저자는 더 기뻐했을 듯하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경계의 음악#에드워드 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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