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 식탁에는 영국 여왕도 못 앉는다?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30일 15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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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를 지루하게 가야하는 원양항해. 이 여정에서 항해의 즐거움을 좌우하는 게 요리장의 손맛이다. 야무진 손맛의 요리장은 선원들을 파라다이스로 이끄는 등대지만, 반대의 경우는 ‘지옥’으로 이끈다. 음식이 맛있으면 웬만한 불편함은 잊고 지낸다. 하지만 시원찮으면 분위기가 흉흉해진다. 이럴 때면 선내 소란이 예상되므로, 선장은 금주령을 내린다.

선원은 크게 갑판부, 기관부, 사주부로 나뉜다. 음식을 책임지는 사주부는 요리장과 요리사, 사환 등으로 구성된다. 1980년대 초반 내가 탄 배의 선원은 30명 정도였는데, 사환(심부름을 하는 사람)이 2명 있었다. 사환 중 ‘사롱 보이’는 선장만을 보필했고, ‘메사롱 보이’는 기관장, 1등 항해사 등 사관을 돌봤다. 이들은 식사시간에 맞춰 기상 콜을 해주고 식사를 차려줬다. 선원이 줄면서 이들도 사라졌다.

1940년대 후반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정부가 도입한 원양상선에 탔다. 영부인에게 해군참모총장이 선장이 앉는 식탁의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그러자 영부인은 “선박에서 선장은 최고직이고 그의 자리는 영국 여왕도 앉지 않는다. 예절에 어긋난다”고 말하며 옆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이 때부터 선박회사 사장이 승선해도 선장자리에는 앉지 않는 전통이 생겨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부식을 잘 갖추는 것은 선장의 주요 임무다. 부식비가 한정돼 있으니 저렴한 곳에서 식재료를 실어야한다. 미국을 오갈 때는 국내서 야채와 라면, 소주, 적도제(배가 적도를 통과할 때에 안전한 항해를 비는 제사)에 사용할 돼지머리 등을 실었다. 쌀, 고기 및 오렌지는 미국 서부에서 구입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나오는 소금구이는 가장 기다려지는 메뉴였다. 미국 산 쇠고기에서 기름기가 양 옆으로 살짝 붙은 부분을 아주 얇게 썰어낸다. 이를 구워서 소금을 쳐서 먹었다. 면세 맥주와 소금구이를 먹는 날에는 1시간이면 끝날 저녁 시간이 2, 3시간으로 연장된다.

정박 중 깨끗한 물을 공급받는 것도 선장의 주요 업무다. 이 때 받은 물은 식수와 목욕 등에 사용한다. 화물을 실을 공간이 필요하므로 물을 많이 싣지 못한다. 외항에서 정박이 길어지면 식수가 떨어져 절수 명령이 내려진다. 마실 물이 떨어져 가면 선장은 애간장이 탄다. 비가 내리면 천막을 펴서 빗물을 받아 목욕물로 썼다.

선원 전부가 한꺼번에 식사할 수는 없다. 식사 중에도 배는 항해해야 하므로 선교에는 충돌 방지를 위한 인력이 있어야한다. 2등 항해사는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 당직시간인데, 1시경에 같이 당직을 서는 조타수가 된장찌개를 끓여 와 간단히 먹는다. 아침시간은 취침중이라 먹지 못한다. 저녁 식사시간 선교에는 1등 항해사가 당직을 서 있기에 3등 항해사가 잠시 교대해준다. 1등 항해사가 빨리 식사하고 오기를 3등 항해사는 학수고대한다.

1980~1990년대에는 한국 국적 선원만 승선해 우리 음식만 제공하면 됐다. 이제는 외국선원이 많아 다양한 입맛을 맞춰야한다. 식사시간에 대한 선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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