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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21세기 新야만 잠재울 ‘관용의 정신’을 말하다

입력 2018-12-29 03:00업데이트 2018-12-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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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지 않은 몰락/강상중, 우치다 타츠루 지음·노수경 옮김/304쪽·1만6000원·사계절
중동의 혼란을 수습하겠다는 명목으로 군사 개입을 했던 서구 국가들은 일상적 테러 위협에 노출돼 있다.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극장 테러사건 직후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과 촛불이 놓인 모습. 동아일보DB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많은 사람이 ‘이제 두 번 다시는(Never Again)’이라고 굳게 맹세했다. 하지만 살육은 결코 멈출 줄 몰랐으며 전 세계에서 크고 작은 비극이 일어났다.”

강상중은 이상적으로 여겨졌던 국민국가, 자본주의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곳곳에선 인류의 안위를 위협하는 테러가 벌어지고 시민들은 극우주의 정치 세력에 열광한다. 일본의 지성인인 그와 우치다 타츠루는 대담을 통해 “근대의 침몰을 막을 수 없다”고 단언하며 세계가 안전하게 다음 단계에 도달할 방법을 모색했다.

테러리즘은 이들이 보기에 근대의 ‘아이러니’다.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건국된 미국과 프랑스는 주변국들의 모범이 됐지만 동시에 테러리즘의 목표물이 됐다. 냉전 이후 기준이 된 ‘근대 모델’에 따라 자유를 원리로 한 국가, 사회, 제도가 출현하면서 중동에는 ‘이슬람 부흥’을 기치로 내건 국가들이 출연했다. 미국은 중동의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군사를 개입시켰다.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과 갈등은 수많은 사상자와 난민을 초래했고 희생자들에겐 분노와 복수의 감정만이 남았다.

저자인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왼쪽 사진)와 우치다 타츠루 고베여자대 명예교수.
그렇게 테러리즘은 서구 대도시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9·11테러와 같은 바깥으로부터의 위협은 프랑스 극장, 카페 테러 등 ‘홈그라운드 테러’로 확장됐다. 강상중은 “현재 우리는 의사(疑似) 전시체제를 살고 있다”고 했다. 우치다 타츠루는 한발 더 나아가 “전쟁을 근절시킬 순 없다. ‘어떻게 전쟁을 없앨까’라는 원리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을 없앨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하면 사망자 수를 줄일 수 있을지 궁리해보자’는 정도의 문제로 관점을 옮겨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 프랑스 ‘국민전선’의 약진, 아베신조 일본 총리의 장기집권 등 세계적인 우경화 현상도 “21세기 새로운 야만의 징조”다. 17세기 이후 들어선 국민국가 체제는 자본주의와 불편한 동거(?)를 시작했다. 자본과 시장은 국가를 넘어 전 세계를 자유롭게 이동하길 원하지만 국가는 이를 국경 안에서 보호하며 운용하고자 했다. 20세기 말 결국 시장이 승리했고 자국의 국경에 높은 담장을 치자는 우경화가 대두됐다.

예컨대 둘의 말에 따르면 아베 총리가 원하는 일본은 시민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북한과 경제적으로 국가의 목표가 성장에 매몰된 싱가포르를 합친 국가다. 우치다 타츠루는 “두 모델 사이에서 경제모델이 중요하고 극우 전체국가는 궁극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뻔할 수도 있지만, 두 지식인은 관용과 환대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전쟁 책임을 반성하며 다른 국가보다 인도적이고 윤리적인 책무에 집중했다. 윤리적 부채 의식은 헌법에 난민 수용 조항을 명문화하는 등의 관용 정책으로 이어졌다. 이슬람 공동체의 ‘자카트 문화’에도 주목한다. ‘기브 앤드 테이크’ 논리가 아니라 먼저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

“어떤 경우라도 사막에서 천막을 발견했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결과 황야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언제나 타자와 공유한다는 도덕이 신체화되었습니다.”

근대의 종언을 단언한 비관론이 주를 이루지만 그래도 이 책이 희망적인 것은 상호부조를 바탕으로 한 작은 지역단위의 공동체가 미국 성장모델을 대체할 미래이기 때문. 그래서 ‘위험하지 않은 몰락’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건 아닐지.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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