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익는 지붕위 타는 저녁놀… 5인5색 막걸리로 빚는 ‘소확행’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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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새 예능 ‘지붕위의 막걸리’

‘지붕 위의 막걸리’ 출연자들이 시골집 지붕 위에 모여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막걸리를 맛보는 모습. 익어가는 술처럼 서로 조금씩 닮아가는 5인방의 ‘케미’도 관전 포인트다. 채널A 제공
‘지붕 위의 막걸리’ 출연자들이 시골집 지붕 위에 모여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막걸리를 맛보는 모습. 익어가는 술처럼 서로 조금씩 닮아가는 5인방의 ‘케미’도 관전 포인트다. 채널A 제공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밥이나 마찬가지다. … 즐거움을 더해주는/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천상병의 시 ‘막걸리’에서)

천상병 시인(1930∼1993)이 “내 한 가지뿐인 즐거움”이라 부른 막걸리. 그러나 스무 살에 맛본 첫 막걸리는 민숭민숭했다. 소주처럼 얼얼하지도 맥주처럼 톡 쏘지도 않는 시큼털털한 맛. ‘맥주는 싱거우니 막걸리를 마시라’는 노랫말을 이해하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런 막걸리를 전면에 내세운 독특한 TV 예능프로그램이 나왔다. 등장인물들은 나름 ‘힙’한데, 카메라워크는 다큐멘터리인 듯 정적이다. 시끌벅적하지 않고 숲과 하늘, 논밭 풍경을 자꾸 비춘다. 은근히 손길을 부르는 맛. 한두 잔 비우다 보면 훈훈해지는 배 속. 채널A ‘지붕 위의 막걸리’(지막리)다.

설정도 심플하다. 별다른 친분이 없던 다섯 멤버가 충북의 한 시골집에 모여 막걸리를 빚는다. ‘고두밥(지에밥)’ 찌기부터 체로 걸러내는 일까지 전부 그들의 몫이다. 틈틈이 동물 가족 끼니도 챙겨야 한다. 저녁엔 직접 차린 안주를 곁들여 막걸리 한잔을 나눈다. 아침엔 기분 좋게 부지런을 떨며 해장 음식을 챙겨 먹는다. ‘지막리’의 2박 3일은 술이 익어가듯 흘러간다.

시골 양조장의 고즈넉함보다는 화려한 도심의 야경을 연상시키던 멤버들의 면모도 이채롭다. ‘알앤비(R&B) 대디’ 김조한은 통기타를 들고 흑인음악 감성으로 흥을 돋운다. 소녀시대 유리는 수준급 요리 실력을 선보이며 보쌈이나 골뱅이무침을 만들어 내놓는다. 그간 TV와 스크린에서 ‘센 캐릭터’였던 배우 이종혁 이혜영 손태영도 손을 모아 막걸리를 빚으며 시골 풍경에 녹아든다.

이들이 무작정 ‘구수한 고향의 향’만 내는 건 아니다. 막걸리를 마시기 전 와인처럼 ‘디캔팅’을 하기도 하고, 서양식 바비큐 요리를 안주로 내놓기도 한다. ‘지막리’ 식구들은 맵시 있고 세련된 방식으로 막걸리를 즐긴다. 홍국쌀(누룩곰팡이를 발효시켜 만든 붉은 쌀)을 넣어 ‘핫 핑크’ 색을 띠는 홍국막걸리처럼.

시골 마을에서 생활하기는 예능에서 그리 낯설지 않은 포맷이지만, ‘지막리’는 은근한 취기가 감돈다. 호화 게스트나 게임, 놀이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다. 매주 다른 이야기를 품은 막걸리를 함께 빚으며 멤버들이 도란도란 쌓아가는 ‘케미’를 감칠맛 나게 이끌어낸다. 최근 제작발표회에서 출연진은 “혼자보다 같이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입을 모았다. 연출을 맡은 김군래 PD는 “시청자도 프로그램을 보고 직접 술을 빚어 보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미슐랭가이드에 오른 주점에서 세련된 막걸리 한잔을 맛봐도 좋고, 소시지 부침을 안주 삼아 집에서 한잔을 기울여도 좋다. 깊이 익어가는 가을에 뽀얀 막걸리 한잔을 더해 볼까. ‘지붕 위의 막걸리’는 매주 수요일 오후 11시 채널A에서 방영한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채널a#지붕 위의 막걸리#김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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