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후]아사히신문 기자로 30년, 2년 전 퇴사한 이나가키 씨의 하루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5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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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70에도 백발을 휘날리며 현장을 누비는 직원을 보고 싶습니다.”

한 기업 대표는 직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60세 정년을 넘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하는 외국 같은 풍토를 만들어보자는 거였다.

정말 좋은 말이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조퇴(조기 퇴직)가 늘고 있다. 후배와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살벌한 시대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위아래로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먼 나라 얘기로 들리는 요즘이다.

그런 와중에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로 30년을 일하다 2년 전 퇴사한 이나가키 에미코 씨(稻垣えみ子·53)와 e메일 인터뷰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돈과 물질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면 자유롭게 살 수 있음을 그는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홀로 생활하기에 가족이 있는 직장인 입장에서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다만 소박한 식단과 전기 절약 등 미니멀 라이프(최소한의 삶)의 필요성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이나가키 씨의 하루는 단촐했다. 오전 5시 반에 일어나 요가로 하루를 시작한다. 9시 나카메구로(中目黑)의 한 카페로 출근해 아침 식사를 한 뒤 글을 쓴다. 이후 정오에 집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한 뒤 짧은 낮잠을 잔 뒤 오후에는 다시 카페에서 원고 집필을 한다. 그리고 귀가해선 저녁 식사와 피아노 연습을 한다. 이어 대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며 하루의 피로를 풀고 9시부터 라디오를 들으며 책을 읽거나 바느질을 하다 잠이 든다.

이나가키 씨는 “밥은 스스로 만들어먹는 조촐한 식사라 한번 식비는 200엔(1950원) 정도다. 하루 2끼에 반주를 포함해도 600엔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이어 “집세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이것도 여차하면 인구 감소가 심한 시골에 친구가 많아 빈집에 살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그것이 자신의 즐거움이자 친구와 좋은 관계를 쌓으며 노후의 풍요로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다.

그는 “지금 하고 싶은 건 지금 모두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 요리하고 카페에서 단골손님과 얘기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원고를 쓰는 일 모두 ‘즐거운 일’이자 ‘하고 싶은 일’이라고 했다.

“인생에서 첫 번째, 두 번째로 즐거운 일, 혹은 재미없는 것을 나누지 않기로 생각했어요. 회사 다닐 때는 달랐죠. 상대와의 경쟁에 이겨 행복해지려던 시대에는 그렇게 인생을 나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나를 끝없는 지옥에 몰아넣은 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혹시나 독신 생활이 지루하진 않을까.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없을까. 그는 단호하게 답했다. “대학 졸업 후 30년을 혼자 살고 있거든요.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길고양이나 근처의 애완용 고양이에게 참견(ちょっかい)하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죠. 결혼은 인연이니까 하고 싶으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심심해서 결혼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웃음)

이나가키 씨의 자유분방하면서도 즐거운 삶은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적게 버는 만큼 적게 쓴다는 가치관 전환 덕분이었다. 중년 이후에 삶에 대해 한 번 쯤 생각해볼 대목이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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