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매혹적 변주로 재탄생한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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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씨/마거릿 애트우드 지음/송은주 옮김/432쪽·1만4500원·현대문학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가 다시 태어났다. 원작의 배경인 섬은 현대 캐나다의 감옥으로 바뀌었다. 영국 호가스 출판사가 2013년부터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현대 소설로 다시 쓰는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열매를 맺은 작품 중 하나다. 맨부커상 수상작인 ‘눈먼 암살자’를 비롯해 ‘시녀 이야기’ ‘그레이스’ 등으로 유명한 저자는 원작의 정신에 충실하면서도 신선하고 매혹적으로 변주를 해냈다.

‘템페스트’는 밀라노의 대공 프로스페로가 동생 안토니오에게 배신당한 후 섬에서 복수를 꿈꾸다 화해와 용서에 이르는 여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연극 연출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메이크시웨그 연극 축제의 예술 감독 필릭스 필립스는 작품에만 몰두하다 행정 업무를 믿고 맡긴 부하 직원 토니의 배신으로 쫓겨난다. 플레처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에게 셰익스피어 희곡을 가르치게 된 필립스는 12년 후 문화유산부 장관이 된 토니와 맞닥뜨리게 된다. 토니가 교도소의 연극 수업을 보러 온 것. 필립스는 ‘템페스트’를 선보이던 중 절묘한 방법으로 토니가 과거의 잘못을 실토하게 만든다.

극 중 극 형식을 통해 원작의 의미를 곱씹는 것은 물론 연극의 매력을 돋보이게 만든 솜씨는 노련하기 그지없다. 필립스가 재소자들과 캐릭터를 분석하고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남성 재소자들이 요정 아리엘 역을 맡길 거부하자, 아리엘이 연약한 요정이 아니라 천둥, 번개, 태풍을 만들어 사실상 특수 효과를 담당한다며 재소자들을 사로잡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프로스페로가 그랬듯 필립스 역시 복수만을 꿈꾸고 마침내 성공한다. 하지만 복수심은 스스로를 어둠 속에 가둬 두는 것임을 깨닫고 용서를 통해 자유로워진다. ‘더 희귀한 행동은 복수보다는 미덕에 있네’라는 대사는 이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필립스는 연극이 공연하는 순간에만 존재하는 일시적인 것이기에 존중한다고 고백한다. ‘연극’이란 단어를 ‘삶’으로 바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대를 위해 글을 쓴 셰익스피어에게 보내는 근사한 헌사다. 원제는 ‘Hag-Seed’.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마녀의 씨#마거릿 애트우드#송은주#셰익스피어#템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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