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백두산의 봄을 부르는 새, 호사비오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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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새 관찰기/박웅 지음/356쪽·3만5000원·글항아리

사냥을 끝내고 줄지어 바위 위에 앉아 깃털을 다듬으며 쉬고 있는 어린 호사비오리들. 글항아리 제공
사냥을 끝내고 줄지어 바위 위에 앉아 깃털을 다듬으며 쉬고 있는 어린 호사비오리들. 글항아리 제공
지은이는 30여 년 경력의 건축사다. 야생 조류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한 건 18년 전부터. 이 책은 한국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백두산으로 날아가 번식하는 새 ‘호사비오리’를 쫓아 6년간 백두산을 오르내린 기록이다

여느 자연관찰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이따금 불편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의지와 관계없이 피사체가 된 생명체들의 삶에 이 사진 촬영 현장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염려스럽게 만드는 사진이 적잖다. 저자는 서문에서 그런 우려를 어느 정도 가라앉힌다.

“새가 사진가를 두려워해 도망가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다. 행여 황급히 도망가는 상황을 야기했다면 적어도 그 뒷모습은 촬영하지 않는 게 도리다. 나무와 새 둥지를 잘라 촬영하기 좋은 조건을 만드는 사진가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 같은 생태 사진가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뭐든 사랑하는 만큼 보인다. 이 책이 숱한 자연관찰 사진 책 가운데 특별히 눈길을 끄는 건 사진의 품질보다 피사체를 대하는 조심스러움을 앞세운 태도의 자취를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화를 앞둔 알이 가득한 둥지를 집요하게 습격한 구렁이를 물리친 이야기 끄트머리에 저자는 이런 고민을 적었다.

“야생의 먹이사슬을 방해한 건 맞다. 뱀의 공격을 막아야 했는지 아니면 간섭 말고 그냥 보고만 있어야 했는지. 둘 중 어떤 선택이 옳은지에 대해 아직 판단이 안 선다.”

호사비오리 암수의 짝짓기와 부화 모습을 쫓은 사연을 뼈대로 삼으면서 물까치 꾀꼬리 후투티 휘파람새 등 백두산에서 만난 다른 새들, 쇠솔딱새 물까마귀 등 호사비오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새들의 사진과 그들을 들여다보며 경험한 이야기도 넉넉히 담았다.

클라이맥스는 어미의 뒤를 따라 용감하게 둥지 밖으로 뛰쳐나가 흙 위에 생애 첫발을 내딛는 새끼 호사비오리 남매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묘한 위로가 전해진다. 인스타그램 애완동물 사진과는 한참 다른 무게의 감동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백두산 새 관찰기#박웅#호사비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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