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언제든 온다는 걸 알면 마음 비우고 살아갈 수 있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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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 무문관 수행일기 펴낸 정휴 스님

정휴 스님 제공
정휴 스님 제공
“삶이 성숙하려면 안으로 여물 시간이 필요하기에 영혼이 맑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정휴 스님(73)은 최근 출간한 ‘백담사 무문관 일기’(우리출판사·사진)에서 이렇게 당부했다. 불교신문 사장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종회의원 등을 지낸 스님은 7년 전 모든 소임을 내려놓고 백담사 무문관 독방에서 수행에 들어갔다. 치열한 수행을 통해 얻은 결과물을 이 책에서 쉬운 언어로 담담하게 풀어냈다.

정휴 스님은 2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서 마음과 몸에 익힌 나쁜 습관과 타성을 털어내려 노력했다”며 “정신은 꾸준한 수행을 통해 새롭게 형성되고 거듭난다는 걸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71년 한 신문사 신춘문예에 시조로 등단한 문인이기도 한 스님은 정제된 언어로 삶을 성찰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자기 응시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탐구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인생이 녹슬고, 과거의 경력에 집착해 권위를 앞세우면 사람들이 외면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님은 “내적으로 눈을 뜨려면 집착에서 벗어나 내려놓고 텅 비워내야 한다”고 말했다. 생을 마감할 때 영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걸 기억한다면 더 가지기 위해 발버둥치고 집착하는 데서 벗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책은 불교 고승뿐 아니라 가톨릭 성자의 예도 들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는 임종이 가까웠을 때 옷을 벗고 알몸으로 땅바닥에 누운 뒤 “오래지 않아 내 육신은 먼지와 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의 정신은 육신을 헌 옷처럼 생각해 죽는 것을 헌 옷 한 벌을 벗는 것이라고 여기는 불교 정신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스님은 “겨우살이 준비를 위해 김장을 하듯이 죽음이 언제 어디서든 덮쳐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면 마음을 비우고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태도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말을 배우는 데 3년이 걸렸는데 경청을 배우는 데 60년이 걸렸다”고 말한 일화를 소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생사를 초월해 삶을 완성해 나간 수행자들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보노라면 얽매임 없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소쩍새가 울고 가을이면 단풍이 뚝뚝 떨어지는 산사의 정취도 함께 맛볼 수 있다. 수행자의 정신과 생활을 한층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백담사 무문관 수행일기#정휴 스님#백담사 무문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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