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세계는 언제부터 시간 약속을 지키게 됐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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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진리라고 믿는 시간 개념… 인간이 편의상 지어낸 규칙일 뿐
아인슈타인과 푸앵카레 연구 통해 시간과 지도의 통일 과정 설명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피터 갤리슨 지음/김재영 이희은 옮김/484쪽·2만5000원·동아시아

십진법 시간을 도입해 1793년경 제작된 ‘프랑스 혁명 시계’. 저자는 “사람들의 생활을 간편하게 해주지 못한 기술적 혁명은 모두 흐지부지 흩어져 사라졌다”고 썼다. 동아시아 제공
십진법 시간을 도입해 1793년경 제작된 ‘프랑스 혁명 시계’. 저자는 “사람들의 생활을 간편하게 해주지 못한 기술적 혁명은 모두 흐지부지 흩어져 사라졌다”고 썼다. 동아시아 제공
잠에서 깨 눈을 뜨면 무엇부터 보는가. 시계, 혹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뜬 시간이다.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고 1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쪼개 알리는 지금의 시계는 언제부터 통용됐을까. 너무도 당연한 듯 여기는 이 방식이 보편적인 것으로 정착되기 전의 세상은 지금과 여러 면에서 많이 달랐다.

지은이는 올해 62세의 미국 하버드대 과학사 및 물리학 교수다. 그는 인류가 시간의 흐름을 헤아리는 유일한 기준으로 삼고 있는 현대의 시간 개념이 사실 그리 머지않은 과거에 “인간이 스스로에게 편리한 방식으로 세계를 표상할 필요에 의해 조직한 하나의 규약”임을 돌이켜 기술했다.

시간과 공간에 눈금을 매긴 지난한 과정에 대해 쓴 까닭일까. 책 내용은 몹시 어렵다. 어째서 영어 원서가 발간된 지 14년이 지나서야 한국어판이 나왔는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이 저자의 책이 국내에 번역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옮긴이는 “사람들의 격려와 재촉이 없었다면 번역 작업을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후기에 적었다.

책의향기 회의 참석자 모두가 이 책을 비중 있게 다뤄야 한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누구도 읽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유일한 이공계 전공자라는 이유로 도리 없이 떠맡았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학부 때 공업수학 중간고사 밤샘 벼락치기 공부의 기억이 떠올랐다. 무엇을 읽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채로 책장을 넘기던 절망의 새벽 도서관.

온전히 이해한 부분은 기껏해야 전체 내용의 4분의 1 정도이겠으나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 지하철에 앉아 읽은 다음 부분만으로도 발걸음이 가뿐해졌다.

“규칙을 강요받을 것이 아니라, 규칙들을 발견하며 즐거워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규칙을 선택하는 건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편리하기 때문이다. 동시성, 시간의 순서, 동일한 지속시간 등의 개념은 최대한 간단하게 자연 법칙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정의된다. 다시 말하면 이 모든 규칙과 정의는 무의식적 편의주의의 열매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 출신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쥘 앙리 푸앵카레(1854∼1912)가 논문 ‘시간의 척도’(1898년)에 남긴 이 말은 시간에 대한 관념이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편의적 규약임을 확인시킨다. 저자는 이 확인을 시간만이 아닌 다른 여러 영역의 관념에 연결한다.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 이건 불변의 진리일까. 지구 위에 유라시아 대륙만 한 크기의 삼각형을 그린다고 가정해 보자. 인간의 시야 밖에 그려진 세 ‘곡선’이 형성한 그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가 아니다. 저자는 “지식의 유동적 측면을 도구 삼아 문제를 가장 간단히 만드는 형식을 선택하라. 그 선택 후에 변함없이 남은 관계가 오랫동안 지식으로 남는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함께 과학적 진보를 이룬다”고 썼다.

이것이 두 번째 장(章)까지의 내용이다. 이어진 4개의 장에는 인류가 지구의 시간을 동기화하고 지표면의 경도를 나눈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스위스 베른의 특허국 심사관이었던 20대 초반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등장한다. ‘시간의 빠르기는 똑같다’는 오랜 보편적 믿음이 편의적 규약일 뿐임을 밝힌 것이 그의 상대성이론이다. 그로 인해 비로소 시간에 대한 추상적 이론과 시계라는 구체적 기계는 오차를 교정하며 결합을 이뤘다.

침대 머리맡 시계가, 조금은 달리 보인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피터 갤리슨#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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