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잽 날리듯 ‘툭’ 건드리는 글 쓰고 싶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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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성석제 지음/284쪽·1만3000원·문학동네

‘사랑하는…’을 최근 낸 성석제 소설가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문학창작촌에 머물며 새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14일 만난 그는 “조선시대 서민도 사대부도 아니면서 권력에 밀접하게 연결된 인물을 통해 ‘인간의 조건’을 탐색하는 소설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사랑하는…’을 최근 낸 성석제 소설가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문학창작촌에 머물며 새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14일 만난 그는 “조선시대 서민도 사대부도 아니면서 권력에 밀접하게 연결된 인물을 통해 ‘인간의 조건’을 탐색하는 소설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청탁이죠.”

‘짧은 소설’을 쓰는 작가적 동기를 묻자 소설가 성석제 씨(57)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성 씨는 200자 원고지 10∼30장가량에 삶의 번득이는 순간을 담아낸 엽편(葉篇)소설 55편을 묶어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을 최근 냈다. 14일 서울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만난 그는 말에도 해학이 넘쳤다. 소설가가 된 계기는 소설인지 산문시인지 수필인지 종잡을 수 없는 ‘전설적인’ 데뷔작 제목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1994)처럼, 다소 어처구니가 없다.

“‘그곳에는…’에도 청탁받은 글이 3편 있어요. 시를 쓸 때인데, 서울시 반상회보인가? 비슷한 거에 싣겠다며 생활에 밀착된 글을 달라고 청탁이 왔어요. ‘알겠습니다’ 하고 20분 만에 보냈지요. ‘다음 주에 실을 글도 보내줄 수 있느냐’고 묻기에 있다고 했지요. 2주 뒤에 세 번째로 ‘글이 또 있느냐’고 묻는데 ‘얼마든지 있다’고 답할 뻔했어요.”

잘 알려져 있듯 성 씨는 1986년 시로 먼저 등단했다. “1994년 여름 너무 더웠고, 시로 잘 수렴이 안 되는 이야기를 다듬어서 짧은 글을 쓰는, 말하자면 ‘폭발물 처리 중’이었어요. ‘이것도 원고료를 주는구나’ 하면서 원고를 모아 낸 게 ‘그곳에는…’입니다. 그리고 이듬해(1995년) 첫 소설 청탁을 받았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시가 아니라 소설 청탁만 오는군요. 서울시가 제 인생을 바꿔 놓은 게지요.”

그는 자신의 짧은 소설은 ‘책상은 책상이다’ 등 함축적인 문장의 스위스 작가 페터 빅셀, ‘모세야 석유가 안 나오느냐’ 등 풍자적 소설을 쓴 이스라엘 작가 에프라임 키션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빛이 번쩍했을 때 잠시 드러난 얼굴이 인화된 듯한 이미지가 소설에 담겨 있기를 바라죠. 툭 건드리는 잽 같은 느낌, 길을 가다가 갑자기 빗방울이 한두 방울 이마에 떨어지는 느낌을 독자에게 주고 싶어요. 정색하고 눈을 응시하면서 ‘도를 아십니까’ 하는 것 말고요.”

짧은 소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길지 않은 글에 익숙한 요즘 읽기 경향과도 맞아떨어진다. 성 씨는 “SNS도 이야기의 한 형태다.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다하지 않을 것이고, SNS 등과 문학이 만나 공존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짧은 소설은 변화가 심하고 적응이 빠른 장르적 속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문장이라는 게 스마트폰의 ‘캐터필러’에 깔려 바스러질지, 하다못해 수레 앞에 선 사마귀처럼 저항이라도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우연히 발견된 페니실린처럼 각자 실험을 계속하다 보면 길을 우연히 찾을 수도 있겠지요.”

그는 “시에 소설을 도입하고, 소설에 시를 도입하는 등 문학의 경계를 확장하는 걸 보면 새로운 우주가 생성되는 걸 목격하는 기분”이라고 덧붙였다.

성 씨는 ‘작가의 말’에 지금부터 9억7568만4612일(약 267만 년) 뒤에 은하계 전체의 공간에 최후의 이야기가 새겨질 것이라고 썼다. 종말 예언이냐고 묻자 “(종말까지 걸리는 시간을) 내가 많이 지연시킨 것”이라고 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소년 잡지 같은 데서 ‘20만 년 뒤에 인류가 멸망할 텐데 어떤 준비가 됐느냐’고 했지요. 그때 제가 멸망을 어떻게 막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멸망까지 걸리는 시간이 더 늘어난 겁니다. 누구나 진심을 가지면 온 우주가 도와주니까요. 어, 요새는 우주, 혼 이런 말 못쓰겠어요.”

하여간 유쾌하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성석제#짧은 소설#청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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