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에도 입은 자유로워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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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영화계 거장 이집트 유스리 나스랄라 감독

“먹고사는 문제, 남녀 문제…. 이집트 사람들의 고민도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아랍 영화제 참석을 위해 방한한 이집트 유스리 나스랄라 감독의 말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먹고사는 문제, 남녀 문제…. 이집트 사람들의 고민도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아랍 영화제 참석을 위해 방한한 이집트 유스리 나스랄라 감독의 말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아직도 많은 동료 감독, 예술인들이 이집트 감옥에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죠.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으면 예술에도 위기가 닥칩니다.”

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유스리 나스랄라 감독(65)은 30여 년 동안 이집트의 사회 변화를 영화에 담아내며 아랍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인물이다. 제6회 아랍 영화제 참석차 내한한 그는 “이집트에선 수십 년 동안 정치와 성, 종교에 대한 3가지 이야기가 금기시됐다. 지금도 검열이 여전하다”며 “다만 내 경우엔 사비 5만 달러를 털어 만든 첫 영화가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으면서 ‘운 좋게도’ 자유가 주어졌다”고 했다.

카이로대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감독은 1988년 각본을 쓴 ‘여름 도둑’으로 데뷔했다. 이후 2012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혁명 이후’를 비롯한 영화에서 아랍 사회에서 민감한 여성 인권 문제와 민주주의,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특히 ‘혁명 이후’는 2011년 아랍권에 불었던 반독재 시위인 ‘아랍의 봄’ 이후 이집트 사회의 갈등을 그렸는데, 실제 시위 현장에서 일부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내 영화를 두고 다들 정치적이라지만 영화 속 캐릭터들은 사랑과 자유, 성을 탐닉합니다. ‘당신은 왜 싸우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해보면 먹고살기 위해, 그리고 사랑하기 위해서더라고요. 그 얘길 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나를 둘러싼 세상 얘기, 정치 얘기에 가닿는 것이겠죠.”

나스랄라 감독은 2010년 이란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가 정치적 이유로 구속되자 이에 항의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그는 “사회가 어려울수록 예술가들의 창작의 자유를 보장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이 벌어지든, 그 이상의 극한 상황이 펼쳐지든 모두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현실이 담긴 무거운 영화나 반대로 멍청한 코미디 영화라 할지라도 예술가들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했다.

감독은 그러면서도 이집트라는 출신 지역 때문에 자신의 영화가 정치적으로만 해석되는 것은 경계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국 관객들에게 이집트 영화라고 하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묻고 싶군요. 베일에 싸인 여성? 테러리즘? 정치적인 이슈를 다 걷어내고 순수하게 작품만 봐주었으면 합니다. 지나친 정치적 해석은 영화에 독이 될 수 있잖아요. 지금 이집트가 어둡고 슬픈 상황이긴 하지만 바닥을 쳤으니 올라갈 때가 올 거라고 믿습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유스리 나스랄라 감독#아랍 영화계 거장#자파르 파나히#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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