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단단해지고, 연기는 유연해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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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의 박윤희-전박찬

배우 박윤희(왼쪽), 전박찬은 무대에서 매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묘하게 닮은 듯한 느낌을 준다. 얼핏 보기엔 신장 차이가 나는 것 같았지만 이들은 “마주 보고 서면 키도 비슷하다”며 웃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배우 박윤희(왼쪽), 전박찬은 무대에서 매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묘하게 닮은 듯한 느낌을 준다. 얼핏 보기엔 신장 차이가 나는 것 같았지만 이들은 “마주 보고 서면 키도 비슷하다”며 웃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극적인 글을 쓰라고 제자를 몰아붙이는 교사 헤르만, 친구의 집을 관찰하고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은밀한 욕망을 점점 대담하게 행동에 옮기며 글을 써 나가는 학생 클라우디오. 이를 지켜보는 헤르만은 혼란에 빠지지만 클라우디오는 침착하다. 매진을 이어가고 있는 연극 ‘맨 끝줄 소년’이다.

헤르만 역의 박윤희(50)와 클라우디오를 연기하는 전박찬(35)을 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이들은 매진 소식에 “감사하면서도 두렵다”고 했다. 2015년 초연한 이 작품은 뇌종양으로 지난해 세상을 뜬 고 김동현 연출가(당시 51세·극단 코끼리만보 창단)의 유작이기 때문이다. 두 배우는 초연도 함께 했다. 고인은 올해도 연출가로 이름을 올렸고 당시 드라마투르그(희곡 연구 및 자료 조사, 작품 해석을 맡는 사람)였던 김 연출가의 아내 손원정 씨가 올해 ‘리메이크 연출가’로 데뷔했다.

이들은 이전보다 유연해지고 더 단단해진 것 같단다.

“예전에는 강하게만 연기했는데, 이번에는 작가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일상에 지쳐가는 헤르만의 감정을 헤아리게 됐어요. 학생 라파(유승락)에게 모욕을 준 것을 사과할 때도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 가슴에 응어리진 모습을 표현하고요.”(박윤희)

“초연 때는 책상 위나 바닥에 드러누워 수업을 듣는 등 반항적이었어요. 이번에는 그런 장면 없이 감정을 가두고 더 차갑게 연기해요. 클라우디오를 소름 끼치는 존재가 아니라 보듬어주고 싶은 아이라는 느낌을 주려 애쓰고 있어요.”(전박찬)

이들은 김 연출가가 다시 작품을 올려도 이렇게 요구했을 것 같단다. 손 연출가는 멈칫하는 배우들을 다독이며 한 걸음씩 나아가도록 독려했다. 작품은 악기의 줄이 하나하나 팽팽하게 조여지는 듯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권력 관계의 전복, 극적으로 터져 나오는 인간의 이중성 등을 그리며 짜릿한 흥미로움을 자아낸다.

이들은 김 연출가를 시인처럼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면서도 책임감 강한 이로 기억했다.

“10년 전에 김 선생님을 만났는데 ‘배우로서 네 세계관은 무엇이니?”라고 물어보셨어요. 누구도 하지 않았던 질문이었죠.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깨치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그거 알 때까지 나랑 놀래?’라고 하셨어요.”(전박찬)

“진짜 같은 환상을 보여주는 게 무대라고 강조하셨어요. 아픈 내색을 전혀 안 하시고 이 악물며 버티셨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가슴을 쳤습니다.”(박윤희)

박윤희는 젊은 시절 한 연출가로부터 배우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1년간 조연출을 하다 무대를 떠났다. 하지만 쉬지 않고 연극을 보며 감각을 유지했고, 다시 배우로 돌아왔다. 2007년에는 ‘심판’으로 동아연극상 유인촌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그는 “어딘가에 내 무대가 있을 거라 믿었다”며 “예전에는 이름 석자를 남겨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지금은 후배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해맑은 얼굴의 전박찬은 도발적이면서도 똑 부러지는 연기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즐거움과 위로를 건네는 배우가 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30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1만∼5만 원. 02-580-1300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맨 끝줄 소년#박윤희#전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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