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효서 “이번 상은 내가 아직 더 살(쓸) 수 있다는 의사의 선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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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풍경소리’로 제41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 구효서 작가

구효서 씨는 “60대 이상 소설가들의 작품 발표량이 줄어드는 건 작가의 역량보다 젊은 작가에게 집중하는 문단의 시스템 탓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문학사상사 제공
구효서 씨는 “60대 이상 소설가들의 작품 발표량이 줄어드는 건 작가의 역량보다 젊은 작가에게 집중하는 문단의 시스템 탓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문학사상사 제공
 “맨손으로 절벽을 기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으로 씁니다.”

 중편소설 ‘풍경소리’로 제41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설가 구효서 씨(60)는 10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활발하게 작품을 내다가 예순 즈음해 뜸해진 동료, 선배 작가들을 보며 위기감과 불안감을 느낀다”며 “이번 상은 ‘아직 더 살(쓸) 수 있어’라는 의사의 선언과 같다”고 말했다.

  ‘풍경소리’는 과거의 기억에 붙들려 고양이 울음소리를 환청으로 듣는 미와가 시골 산사에서 영혼이 청정해지는 것을 경험하는 이야기다. 이상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인간의 삶과 운명의 의미를 불교적 인연의 끈에 연결시키면서 가을 산사의 풍경과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실험적 문체와 기법으로 절묘하게 결합시켰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우수작으로는 ‘스마일’(김중혁)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이기호) ‘부루마블에 평양이 있다면’(윤고은) ‘눈 속의 사람’(조해진) ‘코드번호 1021’(한지수)이 선정됐다.

 올해로 등단 30년을 맞는 구 씨는 소설집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장편 ‘비밀의 문’ ‘랩소디 인 베를린’ 등을 통해 전위적인 실험과 푸근한 고향의 정서를 오가는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풍경소리’의 모티브는 가곡으로도 만들어진 이은상의 시조 ‘성불사의 밤’에서 나왔다. 구 씨는 “시구 중 주인과 손님이 잠든 뒤 남은 것이 풍경 소리라는 걸 깨닫는 순간 ‘뎅’ 하고 머리가 울리면서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그가 구상한 ‘5감 연작’의 첫 편으로 ‘청각’을 다뤘다. 지난해 여름 발표한 ‘육두구향’은 후각, 집필 중인 작품은 시각을 다뤘으며 촉각과 미각에 관한 작품도 쓸 예정이다. 그는 6·25전쟁 중 한 마을에서 벌어진 학살을 소재로 한 장편도 집필할 계획이라면서, 이 작품을 “왼손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는 얘기다. “내 오른손은 세속화, 제도화돼 (글쓰기의) 반란을 일으키기가 어렵다”며 “왼손으로 쓰니 어색하고 비문도 나오지만 제정신으로는 끔찍한 얘기를 못 쓰겠더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등단했던 해에 이상문학상을 시상하는 문학사상사에 입사했다. 처음 맡은 일이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만드는 일이었다고 한다. “당시 ‘내가 과연 이 상을 탈 수 있을까’ 생각했었죠. 이상문학상은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정말 드라마틱하네요.”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구효서#풍경소리#제41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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