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신라, 법치주의 뿌리내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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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령-관등명 적힌 목간 함안서 발견… 공역 이행 못한 촌주의 반성문 눈길

경남 함안군 성산산성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목간 23점. 이들 중 사면목간에서 6세기 중엽 신라의 율령 지배체제를 보여주는 내용을 확인했다. 문화재청 제공
경남 함안군 성산산성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목간 23점. 이들 중 사면목간에서 6세기 중엽 신라의 율령 지배체제를 보여주는 내용을 확인했다. 문화재청 제공
 법을 무시한 국정 농단 사태가 벌어진 가운데 1500년 전 삼국시대에 법치주의가 지방까지 뿌리내렸음을 보여주는 목간(木簡)이 발견됐다. 6세기 중엽 신라가 대가야를 정벌하기 위해 세운 함안 성산산성에서 율령의 존재와 중앙 관등명이 적시된 목간이 처음 확인됐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경남 함안군 성산산성 발굴조사에서 중앙 관등인 대사(大舍)가 적힌 사면(四面) 목간 1점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목간은 한두 면에 문자를 새기는 게 보통인데 네 면에 걸쳐 글자를 넣는 사면목간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 목간은 길이 34.4cm, 두께 1.0∼1.8cm의 긴 소나무 막대기에 56개의 한문이 적혀 있다.

 내용은 지방 촌주(村主)가 왕경 관직의 상급자에게 율령(律令)에 정해진 공역(公役)을 완수하지 못한 데 대해 사죄하는 것. 고대국가의 법률인 율령이 지방까지 전파돼 지켜진 사실이 고고자료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법흥왕이 520년 율령을 반포했다고 나와 있지만, 구체적인 실상이 유물로 파악된 적은 없다.

 특히 목간 내용 중 지방 촌주의 ‘반성문’이 눈길을 끈다. 이 내용은 “3월에 진내멸(眞乃滅) 촌주(村主)가 두려워하며 삼가 아룁니다. 이타리(伊他罹·이름으로 추정) 급벌척(及伐尺·지방관직 추정)이 법에 따라 30대(代)라고 보고해 30일을 먹고 가버렸습니다. 앞선 때 60일을 대법(代法)으로 했는데 제가 어리석었음을 아룁니다. 성(城)에 계신 미즉이지(미卽이智·이름) 대사(大舍)와 하지(下智·이름) 앞에 나아가 아룁니다”로 풀이된다.

 목간의 핵심인 대법에 대해 발굴단은 율령에 규정된 축성 공역으로 보고 있다. 즉, 율령에 따르면 공사에 지방관(급벌척)과 지방민이 60일 동안 동원돼야 하는데, 급벌척이 절반인 30일만 이행하고 떠난 데 대해 사죄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율령의 엄정한 집행과 더불어 신라 중앙의 지방지배 단면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목간에서 전(前)과 백(白)을 사용해 “∼에게 아룁니다”는 공손한 어투를 구사한 것도 지방 촌주와 대사의 상하관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한일 고대사 권위자인 이성시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전백(前白) 목간은 일본 고대 목간에서도 많이 나온다”며 “신라의 문서행정 체계가 일본으로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신라#법치주의#목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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