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 열풍 끝이 보이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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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함정에 갇힌 미술시장
스타 작가-인기 아이템에만 편중, 새 비전 제시 못해 시장동력 상실
中 신진작가 육성 노력 본받아야

박수근 화백(1914∼1965)의 유채화 ‘귀로(歸路·1964년)’. 동아일보DB
박수근 화백(1914∼1965)의 유채화 ‘귀로(歸路·1964년)’. 동아일보DB
 국내 양대 미술품 경매사 중 하나인 K옥션이 최근 한 사모펀드로부터 300억 원 투자를 유치했다. 수년 전부터 감지된 K옥션의 주식시장 입성을 구체화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사회 전반의 경기 침체에도 국내 미술시장 성장세가 여전히 굳건함을 보여주는 소식이다.

 그러나 미술계 안팎에서는 2012년부터 시장 확장을 선도해온 ‘단색화’ 열풍을 이을 다음 동력이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우찬규 학고재 회장은 “단색화가 한국 현대미술의 가치를 새롭게 알리는 길을 튼 건 확실하다. 하지만 앞날은 솔직히 많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단색화 이후가 없다”는 건 미술시장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서구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의 단색화 컬렉션 구축이 거의 완료된 데다, 새로운 수요가 발생한다고 해도 이미 알려진 작품만큼 수준 높은 매물이 새로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단색화 그룹의 간판 스타인 이우환 작가를 둘러싼 위작 논란이 끊이지 않는 까닭이 바로 이런 상황에 연결된다”고 했다.

 국내 최대 경매사 서울옥션의 모회사인 가나아트센터를 중심으로 올 초 대규모 민중미술 기획전이 잇달아 열린 것은 미술시장이 적극적으로 대안적 테마를 제안한 사례다. 하지만 별 호응을 얻지 못하리라는 예상이 전시 전부터 이미 대세를 이뤘다.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는 “민중미술은 분명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조명해야 할 의미와 가치를 가진 대상이지만 예술작품 또는 미술시장의 상품으로서 미학적 가치를 폭넓게 인정받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지난달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63억2000만 원에 낙찰된 김환기 화백(1913∼1974)의 유채화 ‘12-V-70#172’(1970년). 김 화백의 작품은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4회 연속 경신해 현재 경매가 1∼5위를 모두 차지하고 있다. 동아일보DB
▲ 지난달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63억2000만 원에 낙찰된 김환기 화백(1913∼1974)의 유채화 ‘12-V-70#172’(1970년). 김 화백의 작품은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4회 연속 경신해 현재 경매가 1∼5위를 모두 차지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단색화 열풍은 서로 다른 필법으로 비슷한 방향의 가치를 추구한 동시대 작가들의 활동이 풍성하게 재평가된 드문 사례다. 이렇게 훌쩍 ‘뜬’ 아이템의 인기에 편승해 당장의 이익을 챙기느라 미술시장 참여자와 관련 정책기관 모두 다음 시기에 대한 고민과 준비를 외면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관장은 “시선을 먼 곳에 두지 않고 ‘투자의 안전성’ 추구에만 급급하다 보니 시장과 컬렉션이 다양성을 구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컬렉터의 주견 없이 당장의 유행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양상에서 벗어나야 근본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안 교수는 “미술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예술 작품 활동을 올림픽 경기 보듯 하는 시각이 여전하다. 금메달리스트에게만 모든 관심이 쏟아지듯 ‘해외에서 인정받은 작가’가 아니면 무가치한 존재처럼 취급받는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에게도 ‘작품 활동 외에 생계를 유지할 방도를 미리 준비하라’고 조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지난해 아트 바젤 홍콩 연계 이벤트가 열린 만다린오리엔탈호텔 가니에르 레스토랑에 걸렸던 이우환 작가의 석판화 ‘대화 2’(2011년).
▲ 지난해 아트 바젤 홍콩 연계 이벤트가 열린 만다린오리엔탈호텔 가니에르 레스토랑에 걸렸던 이우환 작가의 석판화 ‘대화 2’(2011년).
 ‘베니스에서 각광받은, 파리에서 갈채받은, 뉴욕에서 인정받은’ 식의 수식에서 자유로워져야 시장의 후진성을 벗을 수 있다는 것. 우 회장은 “현재진행형의 유망 작가가 관심을 얻으려면 갤러리와 미술계 전반의 협력이 필요하다. 중국 미술 시장이 한국보다 늦게 활성화됐지만 스타성이 보이는 자국 작가를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컬렉터는 한국에서보다 쉽게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김 관장은 “젊은 작가들의 활동에 대한 관심을 북돋우는 영국 런던 프리즈 아트페어와 올해 한-프랑스 수교 130년 기념전을 비교하면 한국 정부의 미술 관련 정책이 미술시장 현실과 얼마나 괴리돼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예술정책 같은 건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현장 전문가를 배제하니 장기적 전략이 적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미술품 경매사#단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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