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축제, 코스프레에 눈과 마음을 빼앗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4일 14시 01분


코멘트
심규선 대기자
심규선 대기자
모른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의 꿈과 놀이문화, 사고방식을 접할 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2일 COEX에서 열린 제12회 한일축제한마당에서도 그런 경험을 했다. 특히 두 공연이 그랬다. 하나는 코스플레이어 공연, 다른 하나는 일본 가수 아마쓰키(天月) 공연이었다.

코스프레는 영어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에서 왔다. 만화나 게임 속 주인공의 의상과 분장을 하고 즐기는 것을 말한다. 그런 사람들을 코스플레이어라고 하는 모양이다. 코스플레이어들이 혼자만 즐기지 않고 무대에 나오면 공연이 되고, 공연이 되면 보는 사람도 즐기게 된다. 물론 그런 공연은 한국에서는 거의 전례가 없다.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 따르면 5월에 신촌 연세대 근처에서 처음으로 코스플레이어공연을 했는데 반응이 좋아 이번에 다시 프로그램에 넣게 됐다고 한다. 코스프레의 원천은 만화이고, 일본은 만화왕국이니, 일본은 '코스프레의 선진국'이기도 하다.

한일축제한마당은 이번에 일본에서 5명, 한국에서 3명의 '유명' 코스플레이어를 초청했다. 이게 '대박'이었다. 이번에 무대에 오른 코스플레이어들이 어느 정도 유명한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사회자가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할 때마다 단하에서 함성이 터지는 걸 보고 유명하다고 짐작했을 뿐이다. 현장에서 그들은 이미 아이돌이었다. 야광봉을 들고 응원하는 그룹까지 있었다.

2일 COEX에서 열린 제12회 한일축제한마당에서 무대에 오른 한국과 일본의 코스플레이어들. 한일축제에서 코스프레 공연을 선보인 것은 처음이다. 코스플레이어들이 관객들의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해주고 있다. 주한일본대사관 제공

2일 COEX에서 열린 제12회 한일축제한마당에서 무대에 오른 한국과 일본의 코스플레이어들. 한일축제에서 코스프레 공연을 선보인 것은 처음이다. 코스플레이어들이 관객들의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해주고 있다. 주한일본대사관 제공

무대에 올랐던 코스플레이어들은 장내에 마련된 코스프레서클 부스에서 코스프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전문적인 상담을 해주거나 기념 촬영에 응하는 등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다.
무대에 올랐던 코스플레이어들은 장내에 마련된 코스프레서클 부스에서 코스프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전문적인 상담을 해주거나 기념 촬영에 응하는 등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다.

일본에서 온 코스플레이어 5명은 모두 여성들이었다. 화려한 코스프레 의상을 벗고 분장까지 지우니 그저 생기 있는 20대 여성들이었다. 오른쪽 끝이 토토.
일본에서 온 코스플레이어 5명은 모두 여성들이었다. 화려한 코스프레 의상을 벗고 분장까지 지우니 그저 생기 있는 20대 여성들이었다. 오른쪽 끝이 토토.


무대에 올랐던 일본의 여성 코스플레이어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쓰고 있는 이름은 토토(跳兎·깡충 뛰는 토끼?). 나이는 25세이고 후쿠오카에서 살고 있다.

-언제부터 코스프레를 했나.

"16세부터다. 10년 가까이 됐다."

-코스프레의 뭐가 매력인가.

"동경하는 만화 주인공으로 변신도 하고, 현실과도 선을 그을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언제나 같은 캐릭터로 분장하나.

"그렇지 않다. 오늘은 만화 '기묘한 모험'에 나오는 캐릭터로 분장했지만, 내일이라도 다른 캐릭터로 바꿀 수 있다."

-코스프레와 현실을 혼동할 때도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그렇지 않다. 그런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이 코스프레를 하는지 주위에서도 알고 있는지.

"가족들은 알고 있다."

-애인은 당신을 이해하나(애인의 유무를 이런 식으로 에둘러 물어봤다).

"애인은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느라고 연애할 시간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코스프레를 직업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사무소(한국의 소속사)'에 적을 두고 있고, 그곳의 관리를 받으며 일거리도 얻고 있다. 그럼 '연예인'이 된 게 아니냐고 묻자,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다"라고 쑥스러워했다.

토토의 인상? 분장을 하지 않은 그는 천상 25세의 조신한 일본 여성이었다(일본에서 온 5명의 코스플레이어는 모두 여성이었다. 다른 코스플레이어들과는 말할 기회가 없었으나 분장을 지운 분위기는 대부분 비슷했다. 어디까지나 인상비평이지만). 그런 사람이 분장을 하면 전혀 다른 캐릭터가 되니, 주위에서 알아볼 리가 없다. 그 점이 코스프레의 재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처음 본 코스프레는 새로운 직업이 될 만한 몇 가지 요소를 갖고 있었다. 비현실이 주는 해방감, 원색 분장이 주는 청량감, 캐릭터가 주는 친근감 같은 것들이다. 이런 요소들은 어떤 행사장에서도 수용 가능한 것이고, 관심을 끌고 즐거움까지 주니 활용가치가 적지 않고 발전 가능성도 클 것 같다.

코스프레와 관련해 하나 더. 사실 이날 COEX 행사장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분장을 한 코스플레이어들이 꽤 많이 있었다. 이들은 하루 종일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주변의 눈길을 즐겼다. 이들과 무대에 오른 코스플레이어들이 만날 기회는 없었느냐고? 물론 있었다. 행사장 내에 '코스프레 서클' 부스가 있었는데, 무대에 올랐던 코스플레이어들이 상담도 해주고, 기념촬영에도 응했다. 꽤 붐빈 부스 중의 하나였다.

코스플레이어가 등장했을 때보다 함성이 더 컸던 게 아마쓰키 공연이었다. 기자는 처음 아마쓰키의 한자가 '天月'이라는 사실에 위화감을 느꼈다. 인기가 매우 높다는 J팝 가수의 이름이 수 백 년 전의 역사책에나 나올 법한 시인이거나 스님 이름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그의 등장을 알리는 사회자의 멘트에 일제히 터져 나오는 괴성을 듣고 내 생각이 틀렸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찾아봤다.

일본에서 요즘 인기라는 J팝 가수 아마쓰키의 공연. 그는 무대 위에 인사말이나 노래 제목 등을 한글로 써 놓은 A4용지를 놓고 가끔 이를 읽어가며 한국 관객과 소통했다. 그는 이 종이를 '커닝페이퍼'라고 불러 관객을 웃겼다. 주한일본대사관 제공

일본에서 요즘 인기라는 J팝 가수 아마쓰키의 공연. 그는 무대 위에 인사말이나 노래 제목 등을 한글로 써 놓은 A4용지를 놓고 가끔 이를 읽어가며 한국 관객과 소통했다. 그는 이 종이를 '커닝페이퍼'라고 불러 관객을 웃겼다. 주한일본대사관 제공


"1991년 6월 30일 도쿄 출생. 동영상 공유사이트 '니코니코 동영상'에서 2010년부터 활동시작. 노래 부르는 동영상 재생 횟수 4400만 회 이상으로 인터넷 가수 중 압도적.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미소년의 풋풋한 하이톤 보이스가 특징. 사근사근함과 장난꾸러기 소년 같은 매력도 인기. 주로 10,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으나 점차 남성 팬들도 늘고 있다."

아마쓰키가 한국 팬에게 보내는 동영상도 붙어 있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공연을 하는데 긴장이 되지만 기대를 하고 있다. 열심히 노래를 부를 테니 공연장에서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마쓰키입니다'와 '코엑스에서 만나요'는 한국말로.

그의 공연 모습은 생략하도록 하자. 여느 아이돌 공연처럼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장내에 있던 젊은이들을 휘어잡았다(그때는 행사가 거의 막바지였는데 어디서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는지 모르겠다). 마침 내 옆에 '아마쓰키 군, 사랑해요'라고 일본말로 쓴 종이를 열심히 흔드는 10대 여학생이 서 있기에 물어봤다. 어디가 그렇게 좋으냐고. "3년 전부터 좋아하게 됐다. 내지르는 스트레이트한 창법이 청량하다. (잠시 시간을 뒀다가) 그리고 잘 생겼잖아요."

그러고 보니 나는 일본이나 해외에서 한국 가수들이 현지 팬들의 열광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는 것은 TV나 보도 등을 통해 숱하게 보면서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일본 가수가 한국에서 열광적인 사랑을 받는 것을 목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신기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마쓰키가 무대에 등장하는 방식에도 흥미가 있었다. 그는 사회자의 소개를 받고 등장해서는 공연은 하지 않고, 오디오 성능을 꼼꼼하게 체크했다. 그런 건 미리 점검해뒀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간을 많이 들였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히트곡 일부를 불러 보기도 하고, 무대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음량이나 음질을 체크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리허설 같았다. 다른 아티스트들은 절대로 공개하지 않는 모습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공개한 것이다. 그러면서 오디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공연을 할 수 없다는 뜻을 사회자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당연히 기다리던 젊은이들은 걱정의 탄성을 질렀다.

그날 정말로 오디오의 상태가 좋지 않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요즘 아티스트들은 뭔가 새로운 퍼포먼스를 위해(물론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부단히 노력한다는 것이다. 무대 위의 변화는 무대 밖보다 훨씬 빠르다. 그리고 비록 속이고 속는 것이라도 그것이 무대 위에서라면 즐거움으로 변한다.

젊은이들이라면 다 아는 코스프레를 갖고, 또는 일본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들이라면 이름정도는 들어봤을 아마쓰키를 갖고 웬 호들갑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이는 관심영역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웬만큼 나이를 먹은 사람에게 코스프레와 아마쓰키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나이 먹은 사람들의 변명은 그만하고, 이날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성공을 거뒀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앞으로 한일관계를 이끌어갈 사람들은 이 축제를 기획했거나 후원한 사람들이 아니라 현장에서 즐기는 젊은이들이기 때문이다.

노소와 남녀를 막론하고 축제 현장에서 새로운 공연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한일축제한마당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 머리로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가슴으로 상대방을 느껴보라는. 이날 축사를 한 조윤선 문화부장관의 말이 떠오른다. "문화란 물처럼 흐르고, 물처럼 뒤섞인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