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소득 5배 늘어도 돈 걱정에 시달리는 ‘경제학적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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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1인당 실질소득이 지금보다 5.5배 높아지고 여기서 또 5.5배가 늘어난다고 해도 그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똑같은 돈 걱정에 시달릴 것이다.―피싱의 경제학(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쉴러·RHK·2007년) 》
 


역사상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는 1931년 ‘손자 세대’의 생활을 그려봤다. 그는 발표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한 논문에서 2030년에는 생활수준이 8배 높아질 것이며 주당 근무 시간은 15시간으로 줄어들어 사람들이 남아도는 여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걱정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손자 세대는 생활비를 걱정하며 잠자리에 들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저자들은 케인스의 예상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지적한다. 8배 높아진 생활수준은 케인스의 가정이 거의 맞아떨어진다. 실제로 2010년 미국의 1인당 실질소득은 그때보다 5.6배로 높아졌다. 하지만 남아도는 여가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주당 40시간가량 일을 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다음 달 날아올 카드 이용대금 명세서를 걱정하며 밤잠을 설친다.

저자들은 케인스의 예상이 빗나간 이유는 늘어난 소득 못지않게 씀씀이도 커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비합리적인 소비도 늘어났기 때문에 일에서 쉽게 손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들은 이처럼 현대인이 비합리적인 소비를 늘리게 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기업이나 유통업자들의 ‘피싱(낚시질)’을 꼽는다. 예를 들어 슈퍼마켓은 손님이 가장 많이 찾는 달걀과 우유를 전략적으로 매장 뒤쪽에 배치한다. 소비자가 유제품을 사러 슈퍼마켓을 빙 둘러 가다 보면 깜빡 잊고 있던 다른 물건이 생각나 장바구니에 더 많은 물건을 담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피싱’은 우리가 구매하는 거의 모든 물건에 존재한다. 제품들은 진열대에 놓이기 전에 온갖 마케팅 실험을 거친다. 마케팅에 ‘낚인’ 우리는 실제로 원하지도 않고, 별 쓸모도 없는 제품을 구입하게 된다. 또 기업의 낚시질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독창적이고 다양해진다. 이달에도 월급이 당신의 통장을 잠시 스쳐 지나갔다면 본인이 문 ‘미끼’들을 되짚어보며 스스로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책#피싱의 경제학#조지 애커로프#로버트 쉴러#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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