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 잔광의 절박함은 어디로 사라졌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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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균 ‘뉴욕 1987∼2016’전

오치균의 아크릴화 ‘A Figure’(1986년). 금호미술관 제공
오치균의 아크릴화 ‘A Figure’(1986년). 금호미술관 제공
예술가의 비극적 삶에 대한 정보는 작품을 접하는 관람객의 심사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걸까. 젊은 나이에 옥사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어떤 시인의 처녀작을 읽었다면.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다 권총 자살한 화가임을 모르고서 그의 그림을 먼저 만났다면. 감흥의 깊이와 무게는 과연 작가의 생애에 관한 사전 정보와 전혀 무관할까.

4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화가 오치균 씨(60)의 개인전 ‘뉴욕 1987∼2016’을 각각 혼자 관람한 미술 전공자 두 사람과 차례로 대화를 나눴다. 호오(好惡)는 크게 갈렸지만 기자를 포함해 세 명 모두 한 가지에는 동의했다. 3층에 걸린 1980년대 그림의 칠흑 같은 빛깔이 1, 2층과 지하의 1990년대 이후 대낮 풍경화보다 밝아 보인다는 것.

오 씨는 20대 후반∼30대 초반에 미국 뉴욕에서 공부하며 대도시에 홀로 나와 살아가는 처지로 인해 발생한 뒤얽힌 감정을 두툼한 질감의 아크릴화에 담아냈다.

어둡고 좁은 방에서 뒤틀린 자세를 취한 자신의 몸, 컴컴한 지하철 플랫폼의 잔광(殘光)이 주요 소재가 됐다. 전시자료에 밝혔듯 1993년 이후 그의 작품에서는 경제적 안정, 생활의 여유가 반영된 긍정적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안온한 노을빛에 휘감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진한 가을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한낮 양달의 센트럴파크.

누구도 작가에게 작품을 위해 고단하게 살아가라 강요할 수 없다. 하지만 작가의 삶에 대해 관람객이 인지한 사전 정보는 어쩌면, 작품의 감흥과 아무 관계없을지도 모른다. 붓 끝을 통해 무엇을 얼마나 절실하게 밀어냈는가. 그 판별은 별로 어렵지 않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오치균#개인전#금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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