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임희윤]비틀스, 스키틀즈, 기틀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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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문화부 기자
임희윤 문화부 기자
“잘하면 아이유처럼 차트 줄세우기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준비 많이 했어요. 워낙에 전설이잖아요.”(지난달 28일 N 음악 서비스 사이트 관계자)

지난달 29일 0시, 비틀스 17개 앨범의 국내 디지털 음원 서비스가 반세기 만에 처음 개시됐다. 합법적 방식으로 비틀스의 음원을 국내에서 구입해 듣는 법은 그 전까지는 없었다.

멜론, 지니, 엠넷, 벅스, 네이버뮤직을 포함한 국내 10개 음원 서비스 사이트들은 이날 일제히 메인 화면에 비틀스 배너를 게시했다. 음원을 듣거나 내려받으면 음반이나 티셔츠를 주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엑소, 빅뱅의 컴백에 맞먹는 대규모 프로모션이었다. ‘Yesterday’ ‘I Want to Hold Your Hand’를 비롯한 주요 10∼20곡을 완전 무료 공개하는 파격적인 홍보수단도 동원됐다. 국내 한 음원 서비스 관계자는 “음악 팬으로서 비틀스의 역사적인 디지털 서비스 개시에 일조하게 돼 영광이다. 기대가 크다”고 했다. 그러나 희망은 꿈이었다.

1일 발표된 2월 29일자 멜론의 일간 종합(가요, 팝 통합) 차트 100위권에 비틀스의 음원은 한 곡도 안 들어갔다. 팝 차트 100위권에 그나마 든 9곡도 전부 메인 화면에 노출된 히트곡 모음집 ‘1’에 담긴 것뿐이었다.

한국에서 비틀스를 누른 2월 말의 팝스타는 단연 밀젠코 마티예비치다. 미국 헤비메탈 밴드 스틸하트의 보컬. ‘She‘s Gone’(1990년)으로 유명한 그는 팝 음악계 주류에선 이미 몇 발짝 물러난 옛 록스타이지만 MBC TV ‘일밤―복면가왕’에 출연한 ‘번개맨’이 실은 그였음이 지난달 28일 저녁에 밝혀지자 10, 20대에게도 화제가 됐다. ‘(복면을) 쓰고 부르면 유명해지고 벗고 부르면 망한다’는 가요계 격언이 물 건너온 마티예비치에게도 맞아떨어진 셈이다.

‘2분 30초 안에 끊어라.’ 1960년대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런 공식이 있었다. 길이가 3분이 넘어가면 히트가 힘들다는 것이다. 팝 제작자들은 인상적 후렴구를 2, 3번 반복한 뒤 서둘러 끝나도록 음악을 자르는 데 골몰했다. 비틀스는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년) 같은 음반을 통해 앨범 전체를 통으로 들었을 때 쾌감을 느끼도록 길을 개척했다. 곡 아닌 앨범의 예술을 만들었다.

비틀스, 핑크 플로이드, 롤링 스톤스…. 옛 음악 전설들의 젊은 팬 확보 전략은 요즘 글로벌 거대 음반사에 의해 거의 매년 계속되지만 역부족으로 보인다. 지금의 음악 소비자들은 수많은 채널에서 밀려오는 정보와 재미의 홍수 속에 산다. ‘I Want to Hold…’(2분 24초)는 스마트폰 속 52초짜리 드라마보다 두 배 더 길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과자처럼 문화를 즐긴다고 해서 그런 걸 ‘스낵 컬처’라 부른다.

한때 해외 유명 과자 ‘스키틀즈(Skittles)’를 모방한 ‘비틀즈’란 국산 제품이 출시돼 인기를 끌었다. ‘진짜’나 ‘전통’ 같은 말을 너무 강조하면 거부감이 든다. 요즘 세상에 진짜가 어디 있나. 그래도 가끔 핏줄을 확인하고 싶어질 때는 있다. 역사를 이룬 세계 예술의 기틀들, 또는 대동맥.

임희윤 문화부 기자 imi@donga.com
#비틀즈#음원#스키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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